그리스 신화 속 헤파이스토스의 대장간은 단순한 노동의 공간이 아니었다. 그것은 거친 원석을 단련하여 신들의 무기를 빚어내는, 기술과 혼이 결합한 신성한 영역이었다. 오늘날 울산 온산공장의 거대한 용광로 역시 현대판 헤파이스토스의 대장간과 다름없다. 아연과 연, 동을 제련하며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자랑해 온 고려아연이 최근 자본이라는 거대한 파도 앞에 흔들리고 있다. 쇳물보다 뜨거운 경영권 분쟁의 소용돌이는 단순한 지분 싸움을 넘어, 우리 산업 생태계가 직면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지난 2024년 9월 13일, 사모펀드 MBK파트너스와 영풍 연합이 주당 66만 원에 고려아연 공개매수를 개시하며 포문을 열었다. 이에 맞서 최윤범 회장 측은 10월 11일, 주당 89만 원이라는 파격적인 가격으로 맞불을 놓으며 총 3조 2천억 원 규모의 자기주식 매입 계획을 발표했다. 숫자의 단위가 천문학적으로 치솟을 때마다 시장은 요동쳤고, 주주들은 환호와 우려의 기로에 섰다. 이 가파른 숫자의 계단은 자본시장의 역동성을 보여주는 동시에, 기업의 본질적 가치가 단기적 화폐 가치로 치환되는 씁쓸한 풍경을 자아낸다.
물론 사모펀드의 진입을 무조건적인 악(惡)으로 규정하는 일차원적 시각은 경계해야 한다. 자본주의 시장에서 주주가치 제고와 경영 효율성 극대화는 거스를 수 없는 대원칙이다. 지배구조의 투명성을 확보하고, 안주하는 경영진에게 긴장감을 불어넣는 사모펀드의 순기능을 부정할 수는 없다. 주주들에게 더 높은 배당과 권리를 돌려주겠다는 그들의 명분은 시장 원리에 부합하며, 투자자들의 마음을 흔들기에 충분한 매력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기업은 단순히 재무제표 위에 그려진 숫자의 합이 아니다. 특히 고려아연이 보유한 독보적인 비철금속 제련 기술은 반도체, 이차전지 등 국가 미래 산업의 뿌리를 지탱하는 핵심 기둥이다. 단기적 수익 극대화와 조기 회수(Exit)를 숙명으로 안고 있는 사모펀드의 속성상, 장기적인 연구개발(R&D) 투자와 국가 기간기술의 보호라는 공적 가치는 뒷전으로 밀리기 쉽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갈라 당장의 이익을 취하려는 유혹은 늘 달콤하지만, 그 뒤에 남는 것은 황폐해진 둥지뿐이다.
동양의 고전 『대학(大學)』에는 "덕은 근본이요, 재물은 말단이다(德者本也, 財者末也)"라는 구절이 있다. 여기서 '덕'을 기업의 본질적 기술력과 사회적 책임으로, '재'를 단기적 자본 이득으로 치환해 볼 수 있다. 자본의 논리가 지배하는 시장에서 국가 기간산업의 영속성을 어떻게 담보할 것인가의 문제는 이제 개별 기업의 울타리를 넘어섰다. 주주의 이익을 존중하면서도 국가적 자산인 핵심 기술의 유출을 막을 수 있는 정교한 제도적 안전장치와 사회적 합의가 절실한 시점이다.
뜨거운 용광로 속에서 불순물이 걸러지고 순수한 금속이 추출되듯, 이번 사태가 한국 자본시장과 산업계가 한 단계 성숙해지는 진통이 되기를 바란다. 차가운 돈의 논리가 지배하는 시장의 한복판에서, 우리는 여전히 뜨겁게 살아 숨 쉬는 기술의 가치를 지켜내야 한다. 용광로의 불꽃은 꺼지지 않아야 하며, 그 불꽃을 지키는 것은 결국 사람과 기술의 몫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