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의 어느 섬마을에서 출판사를 차린 30대 청년이 있었다. 폐교 건물을 빌려 독립 서점을 열고, 지역 어르신들의 구술을 책으로 엮었다. 섬 사람들이 처음으로 자기 이야기가 활자가 되는 것을 보며 눈물을 훔쳤다는 이 이야기는, 아름답다. 그러나 3년 뒤 그 청년은 육지로 돌아갔다. 책은 팔리지 않았고, 보조금은 끊겼으며, 혼자서 버티기엔 모든 것이 너무 얇았다.

한국고용정보원의 '지방소멸 2025' 보고서는 냉정한 숫자로 현실을 기록한다. 전국 229개 시·군·구 가운데 62곳이 소멸위험지역으로 분류됐고, 그중 7곳은 이미 '심각' 단계에 접어들었다. 인구가 줄면 상권이 사라지고, 상권이 사라지면 사람이 떠난다. 이 악순환의 고리는 촘촘하고 질기다.

그 고리를 끊겠다고 나선 이들이 로컬 크리에이터다. 양조장을 되살려 지역 막걸리를 브랜드화하고, 폐가를 게스트하우스로 바꾸며, 지역 농산물로 콘텐츠를 만들고 소셜미디어로 세상에 내보낸다. 이들이 쏘아 올리는 이야기들이 때로 외지 방문객을 불러들이고, 때로 귀농·귀촌의 계기가 된다. 작은 불씨들이다.

물론 회의적인 시선도 있다. 로컬 크리에이터가 지방 소멸을 실질적으로 막을 수 있느냐는 물음이다. 일부는 이 현상을 두고 '감성 관광'의 소비 구조를 만들 뿐, 정주 인구를 늘리지는 못한다고 지적한다. 틀린 말이 아니다. 주말에 사진을 찍으러 오는 방문객과, 그 마을에서 아이를 낳고 세금을 내는 주민은 다른 존재다.

그러나 이 비판은 로컬 크리에이터에게 지방 소멸의 책임 전체를 지우는 오류를 범한다. 이들은 행정이 아니다. 정책 입안자도 아니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이 땅이 살 만한 곳임을 증명하는 것'이다. 그 증명이 쌓이면, 소멸 속도를 늦추는 마찰력이 된다. 문제는 그 증명을 이어갈 물리적 조건이 너무 자주 무너진다는 점이다.

지속 가능성의 핵심은 결국 비즈니스 모델이다. 열정은 소진된다. 보조금은 끊긴다. 로컬 크리에이터가 3년, 5년, 10년을 버티려면 수익이 나는 구조가 있어야 한다. 지역 특산물과 콘텐츠를 연결하는 유통망, 공간을 공유하고 비용을 낮추는 협동조합 방식, 지역 청년들이 창업 초기 리스크를 감당할 수 있도록 설계된 장기 저리 지원 등, 개별 크리에이터가 혼자 해결할 수 없는 인프라를 지자체와 중간 지원 조직이 촘촘히 짜야 한다. 생태계가 없으면, 개인의 용기는 소모품이 될 뿐이다.

일본 시마네현의 마을들이 이른바 '소멸 위기'에서 일부나마 회복 탄력성을 보인 것은, 뜻 있는 이주자 한두 명의 헌신 때문만이 아니었다. 이주자가 정착할 수 있도록 설계된 지원 체계, 지역 사업자들 사이의 네트워크, 그리고 실패해도 다시 시도할 수 있는 완충 구조가 함께 작동했기 때문이다. 한국의 로컬 크리에이터 정책이 아직 '육성'에 머물고 있다면, 이제는 '지속'을 설계할 차례다.

불씨는 있다. 그 불씨를 오래 살리는 것은 바람막이다. 바람막이 없는 불씨는 아름답게 타오르다 홀로 꺼진다. 그리고 마을도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