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먼저 입을 열었다. 「나 요즘 알림 다 꺼놨어.」 카페 창가, 두 손으로 커피 잔을 감싼 채였다. 스마트폰은 가방 안에 있었다. 우리는 두 시간 동안 화면 없이 이야기했다. 헤어질 때, 오랜만에 배가 아플 정도로 웃었다는 걸 깨달았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발표한 2025년 스마트폰 과의존 실태조사는 낯설지 않은 숫자를 내밀었다. 국내 스마트폰 이용자 중 22.7%가 과의존 위험군이다. 다섯 명 중 한 명꼴이다. 알림이 울리지 않으면 불안하고, 화면을 끄면 무언가를 놓치는 기분이 든다. 연결되어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정작 연결의 감각은 희미해진다. 역설이지만, 틀린 말이 아니다.
그래서인지 '디지털 디톡스'니 '폰 없는 저녁'이니 하는 말들이 심심찮게 들린다. 의도적으로 단절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어떤 이는 주말마다 스마트폰을 서랍에 넣고, 어떤 카페는 아예 와이파이를 제공하지 않는 것을 마케팅 포인트로 내세운다. 단절이 하나의 취향이 된 시대다.
물론 반론은 가능하다. 디지털 공간도 충분히 따뜻할 수 있다. 화상통화로 멀리 사는 부모를 매일 보는 사람, 온라인 독서 모임에서 평생 친구를 만난 사람도 있다. 스크린이 곧 단절을 뜻하지는 않는다. 그 지적은 옳다.
그러나 오프라인 공간이 주는 것은 정보나 메시지가 아니다. 침묵이다. 눈 마주침이다. 상대가 말을 고르는 그 짧은 망설임이다. 철학자 마르틴 부버는 진정한 만남을 「나와 너」의 관계라 불렀다. 화면 속 상대는 언제나 편집된 존재다. 그러나 카페 맞은편에 앉은 사람은 피곤한 눈을 감추지 못하고, 말이 막히면 시선을 창밖으로 보낸다. 그 날것의 순간들이 관계를 두껍게 만든다.
오프라인 공간은 단순히 몸이 모이는 장소가 아니다. 그곳은 '속도를 낮추는 장치'다. 빠른 답장을 요구하지 않고, 좋아요를 누를 필요도 없으며, 완벽하게 정돈된 문장을 내놓지 않아도 된다. 엉성하고 즉흥적인 대화 속에서 오히려 진짜 말이 나온다. 서울 어느 골목의 허름한 공방에 사람들이 모이고, 동네 책방이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우리는 더 많이 연결될수록 연결에 더 굶주린다. 어쩌면 그 굶주림은 기술이 해결할 수 없는 종류의 것인지도 모른다. 손이 닿을 거리에 사람이 있다는 감각, 같은 공기를 마신다는 감각. 그것은 초고속 네트워크도 복제하지 못한다.
접속을 끊는 것이 고독이 아니라 용기인 시대. 그 용기가 닿는 자리에 비로소 사람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