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은평구에 사는 김모 씨(72)는 3년째 실버타운 입주를 기다리고 있다. 아파트 한 채를 팔아 노후 자금을 마련했지만, 마음에 드는 곳은 입주 대기만 수백 명이고, 감당할 수 있는 곳은 없다. 월 300만 원을 훌쩍 넘기는 민간 고급 실버타운은 예산 밖이고, 정부가 운영하는 공공 고령자 복지주택은 소득 기준에 걸려 신청조차 못 했다. 그는 「딱 내 형편에 맞는 곳이 없다」고 말했다.

이 한 마디가 한국 실버타운 시장의 구조적 공백을 압축한다. 공급은 늘고 있지만, 정작 수요가 가장 두터운 중산층 은퇴자를 위한 선택지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폭발하는 수요, 그러나 선택지는 양극단뿐

통계청에 따르면 65세 이상 고령 인구는 이미 전체 인구의 19%를 넘어섰고, 2025년에는 20%를 돌파해 초고령사회에 진입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런데 현재 전국 유료 노인복지시설 입소 정원은 수십만 명 수준에 불과하다. 수요와 공급의 격차는 매년 벌어지고 있다.

문제는 단순한 물량 부족이 아니다. 시장이 두 극단으로 쪼개져 있다는 점이다. 한쪽에는 월 입주 비용이 300만~500만 원을 넘나드는 민간 프리미엄 실버타운이 있다. 골프장·수영장·고급 식당을 갖춘 이른바 '노인 호텔'이다. 반대편에는 월 임대료가 수만 원 선인 공공 고령자 복지주택이 있다. 저소득 고령자를 위한 시설로, 소득·자산 기준을 충족해야 입주할 수 있다. 정부 관계부처 합동 자료에 따르면 이 두 극단 사이, 즉 중산층 은퇴자가 감당할 수 있는 '중간 지대'는 사실상 비어 있다.

월 100만~200만 원대 입주 비용으로 적절한 의료·돌봄·커뮤니티 서비스를 제공하는 시설은 전국 어디에도 충분하지 않다. 중산층 은퇴자 대부분이 이 빈 공간에 갇혀 있다.

민간이 외면하는 이유, 공공이 채우지 못하는 이유

민간 사업자들이 중간 가격대 실버타운에 선뜻 뛰어들지 못하는 데는 구조적 이유가 있다. 실버타운은 초기 토지 매입과 건설비가 막대하게 들지만 수익 회수는 수십 년에 걸쳐 이루어진다. 수익성을 맞추려면 입주비를 높게 책정할 수밖에 없고, 그 결과 자연스럽게 고가 시장으로 수렴한다. 중간 가격대를 유지하려면 규모의 경제나 공공 지원 없이는 사업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게 업계의 공통된 시각이다.

공공 부문의 한계도 뚜렷하다. 정부는 2024년 7월 경제 정책 방향 발표를 통해 고령자 주거 지원 확대를 예고했지만, 예산과 부지 확보, 운영 주체 문제가 얽혀 실제 공급 속도는 더디다. 지방자치단체마다 재정 여건이 다르고, 혐오시설로 인식하는 지역 주민의 반발이 부지 선정을 가로막는 경우도 적지 않다.

고령사회의 청구서, 지금 당장 설계해야 한다

전문가들은 이 문제를 단순히 복지 예산의 문제로 보지 않는다. 고령 인구가 적절한 주거·돌봄 환경을 갖추지 못하면, 결국 의료 수요로 전환돼 건강보험 재정을 더 빠르게 잠식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예방적 고령자 주거 인프라가 장기적으로 사회 비용을 줄이는 투자라는 인식이 아직 정책 설계에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일본은 이미 1990년대 후반부터 '서비스형 고령자 주택(サービス付き高齢者向け住宅)' 제도를 도입해, 민간 사업자에게 보조금과 세제 혜택을 주는 대신 임대료 상한을 설정하는 방식으로 중간 가격대 시장을 육성했다. 한국이 지금 당면한 과제와 구조가 거의 같다. 다른 점이 있다면, 일본이 이 제도를 설계할 때보다 한국의 고령화 속도가 훨씬 빠르다는 사실이다.

수백 명의 대기 명단, 그리고 대기 명단에도 이름을 올리지 못한 더 많은 중산층 노인들. 그들이 노후를 보낼 공간은 누가, 언제, 어떻게 만들 것인가. 그 답을 미루는 시간만큼 청구서의 액수는 불어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