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자가 때리고, 아들이 폭언하고, 요양원 직원이 방치한다. 보건복지부가 지난 6월 발표한 「2025년 노인학대 현황 보고서」는 이 불편한 진실을 수치로 확인시켜 준다. 학대 행위자 가운데 배우자가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했고, '아들'이 23.5%(2,123건)로 뒤를 이었다. 가해자의 절반 가까이가 피해자의 '가족'이다. 학대가 집 안에서 시작된다는 말이다.

매년 6월 15일은 세계 노인학대 인식의 날이다. 유엔이 지정한 이날, 전 세계는 노인을 향한 폭력과 방임을 직시하자고 다짐한다. 그러나 한국의 현실은 그 다짐이 아직 구호에 머물러 있음을 보여준다. 신고 건수가 늘었다는 것이 반드시 학대가 늘었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가정 내 학대가 구조적으로 은폐되기 쉬운 구조, 그리고 피해 노인이 스스로 신고하지 못하는 현실을 감안하면, 통계에 잡히지 않은 사각지대는 훨씬 광대할 것으로 분석된다.

본지는 세 가지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고 판단한다.

첫째, 학대는 '낯선 악인'이 저지르는 일이 아니다. 가해자의 상당수가 가족이라는 사실은 이 문제를 단순한 범죄 예방 차원으로 접근해서는 해결할 수 없음을 시사한다. 돌봄 부담에 짓눌린 가족 구성원이 가해자가 되는 구조적 악순환을 끊으려면, 공적 돌봄 체계를 지금보다 훨씬 촘촘하게 확대해야 한다. 요양 서비스 접근성을 높이고, 가족 돌봄자를 위한 심리 지원과 휴식 보장을 법제화하는 것이 선행 조건이다.

둘째, 시설 내 학대는 더욱 철저한 감시 구조를 요구한다. 가정과 달리 시설은 공적 인허가 아래 운영된다. 그럼에도 폐쇄적 환경 탓에 학대 행위가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는 경우가 반복된다. 불시 점검 주기를 대폭 늘리고, 입소 노인이 외부와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는 독립적 창구를 제도화해야 한다. 내부 고발자 보호 규정을 강화하는 것도 빠뜨릴 수 없다.

셋째, 피해자가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노인학대 신고율이 낮은 이유는 무지 때문만이 아니다. 신고 후 가족과의 관계 단절, 시설 퇴소, 경제적 의존 문제 등 현실적 두려움이 피해자의 입을 막는다. 신고 이후 피해 노인의 주거와 생계를 즉각 보장하는 연계 체계가 없다면, 신고 창구를 아무리 늘려도 그것은 반쪽짜리 대책이다.

노인학대는 고령화 속도가 빠를수록 더 깊은 그늘을 드리운다. 한국은 이미 초고령사회 진입을 눈앞에 두고 있다. 지금 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오늘의 통계는 내일의 바닥이 될 것이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노인보호전문기관의 인력과 예산을 실질적으로 확충하고, 국회는 학대 피해 노인 지원의 법적 공백을 이번 회기 안에 메워야 한다. 6월 15일 하루의 캠페인이 아니라, 365일 작동하는 감시망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