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사소송 하나를 끝내는 데 평균 몇 년이 걸릴까. 복잡한 경제사건이나 행정소송이라면 1심 판결이 나오기까지 3년을 넘기는 일이 드물지 않다. 피해자는 그 시간을 고스란히 감당한다. 가해자에겐 지연 자체가 전략이 된다.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Justice delayed is justice denied)'라는 법언은 오래됐지만, 한국 법정에서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법조일원화의 역설 — 경험은 쌓였지만, 법관은 줄었다
2013년 도입된 법조일원화 제도는 변호사·검사 등 법조 경력자만 법관으로 임용하는 방식으로 전환했다. 취지는 분명했다. 현장 경험 없이 사법연수원을 갓 나온 20대 판사가 생사여탈권에 가까운 판결을 내리는 구조를 바꾸자는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법관의 질적 전문성은 높아졌다. 그러나 양적 공급은 반대 방향으로 움직였다.
사법제도 개편 공청회 발제 자료에 따르면, 법조일원화 시행 이후 법관 평균 연령은 5.8세 상승해 45.1세에 달했다. 신규 임용 법관의 평균 연령도 29.3세에서 35.6세로 올랐다. 6년 이상의 법조 경력을 쌓아야 법관 지원이 가능한 구조에서 불가피한 결과다. 문제는 여기서 시작된다. 임용 연령이 높아지면 현직 재임 기간이 짧아지고, 동일한 법관 정원으로는 처리할 수 있는 사건의 총량이 줄어든다. 재판 지연은 법관의 능력 부족이 아니라 구조적 인력 부족에서 비롯된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쌓이는 사건, 버티는 법관 — 과부하의 실체
법관 1인이 연간 처리하는 사건 수는 주요 선진국과 비교해 이미 높은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여기에 소송 구조의 복잡화가 가세했다. 기업 분쟁, 금융 사기, 디지털 범죄, 의료 소송 등 전문 지식을 요하는 사건 비중이 빠르게 늘어나면서, 사건 하나당 심리에 투입해야 하는 시간과 자원이 늘었다. 법관 숫자는 제자리인데 사건의 무게는 무거워지고 있다.
이 과부하는 재판 품질에도 영향을 미친다. 충분한 심리 없이 내려지는 판결, 기일이 수개월씩 밀리는 법정, 당사자들이 지쳐 소를 포기하거나 억울한 합의를 수용하는 상황 — 이 모든 것이 사법 불신의 실제 얼굴이다. 신뢰는 추상적 감정이 아니다. 「내 사건이 제때, 제대로 다뤄지는가」에 대한 구체적 경험에서 만들어진다.
해법의 윤곽 — 법관 정원 확충과 제도 보완의 교차점
법관 정원법 개정 논의가 국회 안팎에서 이어지고 있다. 현행 법관 정원을 실질적으로 늘리고, 예비판사나 재판연구원 제도를 확대해 법관의 업무 부담을 분산하는 방안이 거론된다. 법조일원화 제도 자체를 되돌리자는 주장은 소수이지만, 경력 요건 완화나 유연화를 통해 임용 가능한 인력 풀을 넓혀야 한다는 목소리는 커지고 있다.
다만 단순한 숫자 확충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재판 전 조정·중재 절차를 활성화해 법정까지 오는 사건 자체를 줄이고,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소송 절차 간소화를 병행해야 실질적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인력과 제도, 두 축을 동시에 고쳐야 하는 과제다.
사법 신뢰는 한 번 무너지면 회복하는 데 훨씬 오랜 시간이 걸린다. 지금 이 순간에도 판결을 기다리는 수십만 건의 사건이 법원 어딘가에 쌓여 있다. 법관 평균 연령 45.1세라는 숫자는 단순한 인사 통계가 아니다. 그것은 제도가 보내는 경고 신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