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퍼스에 벚꽃이 피는 봄이면, 어김없이 부고가 따라온다. 신입생 환영회 대신 폐교 공고. 합격자 발표 대신 매각 공고. 지방의 어느 대학 정문 앞에 붙은 「학교법인 해산 결의」 안내문은, 이제 낯선 풍경이 아니다.
숫자가 먼저 말한다. 대학교육연구소 자료에 따르면, 대학 입학 가능 인원은 2020년 46만 4,826명에서 2023년 40만 694명으로 줄었다. 3년 만에 6만 명이 증발했다. 그리고 2040년에는 28만 3,017명까지 떨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지금의 절반이 조금 넘는 수치다. 이 숫자들의 무게는, 대학 정원표가 아니라 지역 지도 위에서 더 무겁게 느껴진다.
지방 대학의 소멸은 단순히 캠퍼스 한 곳이 사라지는 일이 아니다. 도서관이 닫히고, 소극장이 문을 걸고, 지역 청년들이 학교 버스 대신 서울행 기차에 오른다. 상권이 쪼그라들고, 교직원 가족이 떠나고, 읍내 커피숍 하나가 또 간판을 내린다. 대학 하나가 품고 있던 생태계 전체가 함께 꺼지는 것이다.
물론 불가피하다는 시각도 있다. 학령인구 감소는 정책으로 막을 수 없는 인구 구조의 문제이며, 부실 대학의 구조조정은 오히려 고등교육의 질을 높이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논리다.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러나 이 논리는 서울 한복판에서는 꽤 설득력 있게 들려도, 반경 30킬로미터 안에 공공도서관도 문화센터도 없는 군 단위 소도시에서는 사치스러운 말이 된다.
여기서 되물어야 한다. 대학이 18세에서 22세까지만을 위한 공간이어야 하는가.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 지역 대학은 진작에 '평생학습 허브'로 전환했다. 영국의 오픈 유니버시티나 독일의 폴크스호흐슐레(시민학교) 모델은, 대학이라는 물리적 공간과 지적 인프라를 40대 직장인, 60대 귀농자, 장애를 가진 이웃과 함께 나누는 방식을 오래전부터 실험해왔다. 비어가는 강의실을 아이 돌봄 공간으로, 도서관을 마을 아카이브로, 기숙사를 청년 창업 기숙촌으로 바꾼 사례들이 이미 현실에 존재한다.
한국에서도 조용히 그 방향을 모색하는 움직임이 없지 않다. 일부 지자체는 폐교 부지를 문화예술 복합공간으로 전환하는 협약을 체결했고, 교육부도 평생교육 단과대학 지원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그러나 속도가 너무 느리고, 규모가 너무 작다. 대학 하나가 지역 사회에서 수십 년간 쌓아온 네트워크와 공간과 신뢰를 해체하는 데는 단 한 해면 충분한데, 그것을 다른 형태로 재건하는 데는 예산도 의지도 아직 따라오지 못하고 있다.
필요한 것은 거창한 비전 선언이 아니다. 지금 당장 폐교 위기에 처한 대학 건물을 매각하기 전에, 그 지역 주민들과 함께 '이 공간을 어떻게 쓸 것인가'를 먼저 묻는 절차 하나면 된다. 법인 해산이 곧 지역 자산의 사유화로 이어지는 지금의 경로를 끊고, 공공이 개입할 시간을 벌어야 한다. 그 시간 안에 지역 커뮤니티 대학, 노인 디지털 교육 거점, 청년 공유 작업실 같은 씨앗들을 심을 수 있다.
벚꽃은 지고 나서야 열매를 맺는다. 지방 대학의 봄이 끝났다면, 우리는 이제 그 자리에 무엇을 심을지 결정해야 한다. 꽃이 진 자리를 그냥 두면, 남는 것은 빈 가지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