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실 뺑뺑이, 소아과 오픈런, 분만 가능한 병원을 찾아 두 시간을 달리는 산모. 이것이 지금 대한민국 필수의료의 실제 풍경이다. 의사 수 논쟁이 수년째 정치권을 뜨겁게 달구는 동안, 정작 현장은 다른 속도로 무너지고 있다.
본지는 필수의료 붕괴를 막기 위한 해법의 핵심이 의대 정원 숫자 싸움이 아니라, 지역·필수의료 수가 정상화와 인프라 구축에 있다고 판단한다. 그 근거를 세 가지로 제시한다.
첫째, 의료 자원의 문제는 수량보다 배분에 있다. 우리나라의 인구 1,000명당 CT 촬영 건수는 333.5건으로 OECD 평균(177.9건)의 약 두 배에 달한다. 이 수치는 의료 접근성이 낮아서 생긴 결과가 아니다. 오히려 특정 검사와 수술에 수가가 집중되면서, 의사들이 수익성이 낮은 응급·중증·분만 영역을 떠나 비급여 중심 진료로 몰리는 구조적 왜곡의 산물이다. 의사를 더 늘려도 이 구조를 그대로 두면, 신규 인력은 다시 피부과·성형외과로 향할 공산이 크다. 숫자가 아니라 인센티브 설계가 문제의 핵심이다.
둘째, 지역 필수의료 수가는 여전히 원가에 못 미친다. 응급의학과·흉부외과·신경외과 등 이른바 「빅5」 필수과목의 처치 수가가 실제 인력·장비 투입 비용을 밑돈다는 것은 의료계 안팎에서 오래전부터 지적돼 온 사실이다. 병원이 이들 과를 유지하면 적자가 쌓인다. 지방 중소도시의 공공병원이 연이어 해당 진료과를 폐쇄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수가를 현실화하지 않은 채 「지역 의사제」나 「공중보건의 확대」 같은 공급 측 카드만 꺼내드는 것은, 새는 파이프를 막지 않고 물만 더 붓는 것과 다르지 않다.
셋째, 인프라 구축은 수가 정상화와 동시에 진행돼야 실효를 거둔다. 권역외상센터·분만취약지 지원사업 등 정부가 지역 필수의료에 재정을 투입한 사례들은, 수가 보전이 뒷받침될 때 인력 유지율이 높아진다는 것을 보여준다. 시설을 지어놓아도 의사가 남지 않으면 공허한 건물에 불과하다. 지역 근무에 대한 실질적 보상 체계 — 수가 가산, 장기 근속 인센티브, 정주 여건 지원 — 가 인프라 투자와 패키지로 묶여야 한다.
의대 정원 논쟁이 완전히 무의미하다는 말이 아니다. 그러나 그 논쟁이 지난 수년간 필수의료 붕괴의 진짜 원인을 가리는 연막이 되어온 것도 사실이다. 정부와 의료계 모두 숫자 싸움에서 한 발 물러서야 한다.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은 응급실을 지키는 의사가 그만둘 이유를 없애는 일이다.
필수의료는 국가가 최후까지 지켜야 할 공공재다. 수가를 고치고, 지역 인프라에 돈을 쓰고, 의사가 남을 이유를 만드는 것 — 이 세 가지를 동시에 밀어붙이지 않으면, 다음번 의대 논쟁이 끝날 즈음 우리는 또다시 같은 자리에 서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