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직장인은 1년에 1,872시간을 일한다. OECD 평균보다 130시간, 하루 8시간짜리 근무일로 환산하면 16일이 더 많다. 누군가의 여름휴가 두 배에 해당하는 시간이 '기본값'으로 쌓인다. 그 시간 동안 만들어낸 생산성이 OECD 상위권이라면 그나마 위안이 되겠지만, 사정은 반대다. 장시간 노동과 낮은 시간당 생산성이 동시에 나타나는 이 역설이야말로 주4일제 논의가 더 이상 미뤄질 수 없는 이유다.

본지는 주4일제 전면 도입을 무조건 지지하지 않는다. 업종별 현실, 중소기업의 인건비 부담, 서비스업의 구조적 특수성을 무시한 획일적 도입은 오히려 현장을 혼란에 빠뜨릴 수 있다. 그러나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가능한가, 불가능한가'의 이분법이 아니다.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 누구부터 시작할 것인가를 두고 정부와 기업이 본격적인 논의 테이블에 앉는 일이다.

근거는 세 가지다. 첫째, 장시간 근로는 생산성을 높이지 않는다. 국제노동기구(ILO)를 포함한 다수의 연구는 주당 50시간을 넘기는 순간 오히려 인지 능력과 판단력이 저하된다고 지적한다. 영국의 4,000여 명을 대상으로 한 주4일제 시범 사업에서 참여 기업의 절대 다수가 생산성 유지 또는 향상을 보고했다. '덜 일하면 덜 만든다'는 가정 자체가 시간당 집중도와 업무 효율을 지우고 하는 계산이다.

둘째, 인구 구조가 시간을 강제한다. 생산가능인구가 줄어드는 사회에서 '더 오래 일하기'로 버티는 전략에는 한계가 있다. 대신 같은 인력이 같은 시간에 더 높은 가치를 만드는 구조로 전환해야 한다. 주4일제는 단순히 '쉬는 날 하루 더'가 아니다. 불필요한 회의를 줄이고, 보고서 중복을 없애고, 실질 업무에 집중하도록 조직 문화를 재설계하는 압력 장치다. 이 압력 없이 자발적 혁신을 기대하기란 어렵다.

셋째, 돌봄과 노동의 양립 문제가 벼랑에 섰다. 저출생의 구조적 원인 중 하나로 긴 근로시간이 꾸준히 지목된다. 아이를 낳고 싶어도 돌볼 시간이 없다는 현실 앞에서 출산장려금은 무력하다. 주4일제 또는 압축근무제의 확산은 부모 세대에게 평일 하루의 여백을 돌려준다. 이는 복지 예산이 아닌 근로제도 개편으로 저출생에 접근하는 유일한 경로 중 하나다.

물론 속도와 방식은 신중해야 한다. 공공기관과 대기업 중심의 시범 사업을 먼저 설계하고, 업종별 데이터를 축적한 뒤 중소기업 지원 방안을 병행하는 단계적 접근이 현실적이다. 정부는 실증 데이터를 수집할 제도적 틀을 만들어야 하고, 기업은 '불가능하다'는 선언 대신 '어디서 시작할 수 있는가'를 물어야 한다.

주4일제 논쟁이 이념 대립처럼 소비되는 동안, 한국의 노동자들은 올해도 OECD 평균보다 16일 더 길게 일할 것이다. 그 16일이 낭비인지 필수인지, 이제는 데이터로 따져볼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