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이온스당 2,700달러를 넘어섰던 국제 금 현물 가격이 2,400달러대로 후퇴했다. 불과 수개월 만에 10% 안팎이 증발한 셈이다. 지정학적 불안과 인플레이션 헤지 수요가 금값을 역대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렸던 흐름이 꺾이고, 이제는 정반대의 힘이 작동하고 있다.
금리, 금을 끌어내리는 '중력'
핵심 변수는 미국의 금리 경로다. 블룸버그 인텔리전스 소속 전략가 마이크 맥글론은 「금리는 중력과 같아서, 금리가 오르면 귀금속을 포함한 모든 자산이 함께 끌려 내려간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미국 국채 5년물 수익률이 연 5%를 웃도는 수준을 유지하는 동안, 금은 이자를 한 푼도 주지 않는 자산이라는 약점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금의 본질적 약점은 '무수익 자산'이라는 데 있다. 보유하는 동안 배당도 없고 이자도 없다. 국채가 연 5% 이상의 수익률을 제공하는 환경에서, 금을 쥐고 있다는 것은 기회비용을 감수한다는 의미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안전자산이 굳이 금일 필요가 없어진다. 맥글론이 지적한 것처럼, 금은 미 국채에 안전자산 지위 자체를 위협받고 있다.
달러 강세와 투기 포지션 청산의 이중 압박
달러 강세도 금값을 짓누르는 또 다른 축이다. 금은 달러화로 거래되기 때문에 달러 가치가 오르면 같은 금을 사는 데 다른 통화 보유자가 더 많은 돈을 써야 한다. 수요가 자연스럽게 줄어드는 구조다. 연방준비제도(Fed)가 시장의 기대보다 더 오랫동안 고금리를 유지할 것이라는 전망이 굳어지면서 달러 인덱스는 견조한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여기에 선물시장의 투기적 매수 포지션 청산이 낙폭을 키웠다. 금값이 최고치를 향해 달리던 시기에 헤지펀드와 자산운용사들은 대규모 롱 포지션을 쌓았다. 금리 인하 기대가 후퇴하자 이 포지션들이 일시에 풀리면서 하락에 속도가 붙었다.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 데이터는 비상업 순매수 포지션이 고점 대비 상당 폭 감소했음을 보여준다.
지정학 리스크는 여전한데…왜 금은 반응하지 않나
중동 긴장,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등 지정학적 불확실성은 오히려 높아졌다. 그런데도 금이 예전처럼 반응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시장 전문가들은 「금리 환경이 지정학 프리미엄을 압도하는 국면」이라고 진단한다. 위기 때 금을 찾는 수요 자체가 사라진 게 아니라, 고금리 자산이 주는 실질 수익이 위험 회피 심리를 흡수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중국과 인도 등 실물 수요 국가들의 매입 속도가 다소 둔화된 점도 수급 균형을 깼다. 특히 중국 인민은행은 공격적인 금 매입으로 국제 수요를 뒷받침했으나, 가격이 고점에서 형성되는 동안 매입 속도를 조절한 것으로 전해진다.
결국 지금 금 시장을 지배하는 논리는 단순하다. 돈의 값이 비싼 시대에는 이자가 없는 자산보다 이자를 주는 자산이 이긴다. Fed가 통화 긴축의 고삐를 언제 풀 것인지, 그 시점이 금값 반등의 분기점이 될 것이다. 2025년 하반기 금리 인하 기대가 재점화되지 않는 한, 금은 당분간 상단이 무거운 흐름을 피하기 어렵다는 게 시장의 지배적 시각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