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당 1만 3,700원. 필리핀 가사관리사를 이용하는 서울 시내 한 가정이 부담하는 비용이다. 국내 가사도우미 시세와 크게 다르지 않다. 정부가 내세운 「저렴하고 안정적인 돌봄 공급」이라는 명분은 숫자 앞에서 이미 흔들린다. 그리고 2025년 9월 7일, 정부는 그 시범사업을 공식 폐기한다고 발표했다. 외국인 가사관리사 도입 시범사업은 이렇게 막을 내렸다. 성과보다 남긴 상처가 더 선명하다.
본지는 이 사업의 폐기를 단순한 정책 실패로 보지 않는다. 오히려 그 과정에서 드러난 세 가지 구조적 문제를 직시해야 한다고 판단한다. 이를 외면한 채 재설계에 나선다면, 같은 실패가 다른 이름으로 반복될 것이다.
첫째, 이탈 문제다. 시범사업 기간 내내 일부 외국인 가사관리사의 사업장 이탈이 이어졌다는 사실은 업계 안에서 공공연히 거론됐다. 이탈의 원인은 처우와 기대 간의 괴리에 있다. 입국 전 제공받은 정보와 실제 근무 환경이 달랐다는 증언이 적지 않았다. 낯선 나라에서 계약 내용과 다른 조건에 놓인 노동자가 이탈을 선택하는 것은 예측 가능한 결과였다. 그런데도 이를 막을 구체적 안전망은 사업 설계 단계에서 충분히 갖춰지지 않았다.
둘째, 문화적 매칭의 실패다. 가사·돌봄 서비스는 일반 제조업 노동과 다르다. 언어, 식문화, 생활 습관, 아이를 대하는 방식까지 밀착된 문화적 이해가 필요하다. 필리핀 출신 가사관리사와 한국 가정 사이의 갈등은 의사소통 단절에서 비롯된 경우가 많았다고 알려진다. 그럼에도 사전 언어 교육이나 문화 적응 프로그램은 부실했다는 평가가 현장에서 나왔다. 가정과 외국인 노동자를 단순히 이어붙이면 된다는 발상이 문제의 출발점이었다.
셋째, 비용 구조의 역설이다. 외국인 가사관리사를 도입하는 핵심 논리는 저비용이었다. 하지만 실제 이용료는 내국인 시장과 큰 차이가 없었고, 외국인 노동자에게 돌아가는 실수령액은 그보다 훨씬 낮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이용자도 체감 혜택이 없고, 노동자도 기대 수입을 얻지 못하는 구조. 중간 어딘가에서 설계의 오류가 비용을 삼켰다. 이 문제를 해소하지 않으면 어떤 국가 출신을 데려와도 결과는 달라지지 않는다.
외국인 가사관리사 도입 자체를 무조건 반대하는 것이 본지의 입장은 아니다. 저출생과 맞벌이 가구의 증가, 노인 인구 급증 속에 돌봄 공백은 분명히 존재한다. 문제는 그 공백을 메우는 방식이다. 값싼 외국 노동력을 빠르게 수혈하면 된다는 사고방식이 이번 시범사업의 근본 오류였다. 노동자의 권리가 불분명하고, 이용자의 만족이 없으며, 중간 매칭 구조가 불투명하다면 어떤 정책도 지속될 수 없다.
정부가 다음 단계를 준비하고 있다면, 세 가지를 먼저 확립하라. 계약 조건의 표준화와 이탈 방지를 위한 실질적 고충 처리 창구, 문화·언어 적응을 위한 충분한 사전 교육, 그리고 이용자 부담과 노동자 실수령액 사이의 투명한 비용 구조 공개다. 이 셋이 없는 재도입은 설계도 없이 짓는 건물과 같다. 무너지는 것은 시간문제다.
돌봄은 소모품이 아니다. 그것을 제공하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정책이 사람을 수단으로만 보는 순간, 신뢰는 무너진다. 이번 폐기 발표가 반성의 끝이 아니라 재설계의 시작이 되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