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품 포장지에 초록색을 칠하고, 나뭇잎 그림을 얹고, '지구를 생각하는 선택'이라는 문구를 붙인다. 비용은 거의 들지 않는다. 그런데 소비자는 지갑을 연다. 이것이 그린워싱(greenwashing)의 본질이다. 친환경을 '하는' 것이 아니라 친환경을 '보여주는' 것. 두 행위 사이의 거리는 생각보다 훨씬 넓다.
기업 입장에서 그린워싱은 합리적인 선택이다. 실제로 탄소 배출을 줄이려면 공정을 바꾸고, 설비에 투자하고, 공급망을 재편해야 한다. 수년이 걸리고, 수백억 원이 든다. 반면 '에코 프렌들리' 라벨 하나를 붙이는 데는 인쇄비가 전부다. 환경 규제가 느슨하고 공시 의무가 없다면, 어떤 기업이 굳이 어려운 길을 택하겠는가. 문제는 이 계산이 소비자와 지구를 동시에 속인다는 데 있다.
국내 상황을 보면 이 구조적 허점이 더 선명해진다. 금융위원회는 기업들이 ESG 성과를 의무적으로 공시하도록 하는 '지속가능성 공시 로드맵' 최종안 발표를 당초 2026년 4월에서 또 연기했다. 기업의 부담 우려와 국민연금 등 기관투자자의 입장을 조율하는 데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이유에서다. 그 사이 기업들은 자체적으로 정한 기준으로, 자신에게 유리한 수치만 골라 발표한다. 탄소 배출 공시가 자율에 맡겨져 있다는 것은, 채점자가 자기 시험지를 직접 채점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소비자도 피해자지만, 점점 더 예민한 피해자가 되고 있다. 유럽연합은 이미 기업의 환경 주장에 대한 근거 제출을 의무화하는 방향으로 규제를 강화했다. '생분해 가능'이라는 문구 하나를 쓰려면 구체적인 조건과 기간을 명시해야 하고, 이를 위반하면 제재를 받는다. 미국 연방거래위원회도 그린 가이드라인을 통해 환경 마케팅의 기준을 지속적으로 조이고 있다. 한국 기업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살아남으려면 어차피 이 기준을 맞춰야 한다. 국내 공시 체계를 늦출 이유가 오히려 없다.
물론 공시 의무화가 만능은 아니다. 숫자를 공개한다고 해서 그 숫자가 정직하다는 보장은 없다. 측정 방식이 표준화되지 않으면, 기업마다 다른 기준으로 탄소 배출량을 산정하고, 그 차이가 면죄부가 된다. 투명한 공시 체계란 단순히 '무언가를 적어 내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어떤 기준으로, 제3자 검증을 거쳐 공개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세 가지가 갖춰지지 않으면 공시는 또 다른 형태의 그린워싱이 될 수 있다.
결국 이 문제는 기업의 도덕성에 기댈 수 없다. 친환경 이미지가 매출로 연결되는 한, 실질 없는 친환경 마케팅의 유혹은 사라지지 않는다. 제도가 그 유혹을 차단해야 한다. 공시 로드맵이 또 한 번 연기되는 동안, 소비자는 오늘도 '지구를 생각하는 선택'이라는 문구 앞에서 지갑을 열고 있다. 그 선택이 실제로 지구에 닿으려면, 기업이 숫자를 숨길 수 없는 구조부터 만들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