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동대문구 창신동 봉제 골목. 40년 넘게 여성 의류를 만들어온 한 공장주는 올 들어 주문량이 30% 넘게 줄었다고 말했다. 이유는 단순하다. 그가 원가 이하로도 팔 수 없는 가격에 티셔츠가 중국 앱에 올라온다. 배송비 포함 3000원. 그의 공장에서 실밥 하나 정리하는 인건비도 안 된다.
이 장면은 더 이상 특정 골목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중소기업중앙회가 2025년 7월 발표한 실태조사 결과는 그 규모를 숫자로 확인시켜 준다. 제조·유통 중소기업 300개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96.7%가 알리익스프레스·테무·쉬인 등 중국 이커머스 플랫폼의 국내 진출로 실질적인 경영 피해를 경험했다고 응답했다. 사실상 전체다. 피해를 입지 않은 기업이 오히려 예외인 셈이다.
가격이 아니라 구조가 무너지고 있다
C커머스(China Commerce)의 경쟁력은 단순히 싸다는 데 있지 않다. 중국 제조업 클러스터에서 플랫폼 직배송으로 이어지는 공급망은 국내 유통 단계를 통째로 건너뛴다. 도매상, 소매상, 물류업체, 납품 중간상 — 국내 유통 생태계를 지탱해 온 중간 고리들이 이 구조 안에서는 존재 이유를 잃는다.
피해는 의류에 그치지 않는다. 생활용품, 주방기구, 문구류, 완구, 소형 가전 부품까지 C커머스가 파고든 품목은 전통적으로 국내 중소 제조업과 소상공인이 버텨온 영역이다. 마진이 얇고 브랜드 파워도 약한 이 시장에서 가격 경쟁력만이 유일한 무기였던 업체들은 지금 그 무기마저 잃고 있다.
골목 편의점이나 동네 잡화점 사정도 다르지 않다. 소비자가 스마트폰으로 동일 품목을 오프라인 판매가의 절반 이하에 주문하는 시대, 진열대를 채우는 행위 자체의 의미가 흔들린다.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등 관련 기관들도 이 흐름을 면밀히 추적하고 있지만, 뾰족한 대응책은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
공정한 경쟁인가, 기울어진 운동장인가
국내 이커머스 업체들은 부가가치세와 관세, 소비자보호법 적용을 받는다. 반면 일정 금액 이하 해외 직구 물품은 세금 면제 혜택을 받으며, 국내 제품안전 기준 적용도 상대적으로 느슨하다는 지적이 업계에서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동일한 소비자에게 같은 물건을 팔면서, 적용받는 규제와 세금 구조가 다르다는 것이다.
정부는 해외 직구 면세 기준 조정 등 제도 개선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으나, 소비자 혜택 축소에 대한 반발과 통상 마찰 우려가 맞물려 결정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국내 산업 보호와 소비자 편익 사이에서 정책 방향을 잡지 못하는 사이, 골목의 시간은 계속 흘러가고 있다.
유럽연합(EU)은 이미 2024년부터 중국 플랫폼에 대한 디지털서비스법(DSA) 적용을 강화하고 일정 규모 이상 플랫폼에 알고리즘 투명성과 불법 상품 모니터링 의무를 부과했다. 미국도 소액 면세(de minimis) 규정 개편 논의를 본격화했다. 한국만 유독 제도 정비 속도가 느리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버텨야 할 이유와 버틸 수 없는 현실
창신동 그 공장주는 자식에게 이 일을 물려주지 않겠다고 했다. 40년 업력도 1000원짜리 경쟁 앞에서는 아무 방패가 되지 못한다는 걸 이제 안다고. 문제는 그가 문을 닫으면 그 자리에 들어오는 것이 새 가게가 아니라 빈 셔터라는 점이다.
중소기업중앙회 조사에서 피해를 경험한 기업 중 상당수가 인력 감축이나 생산 축소를 이미 단행했거나 검토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단순히 한 업종의 문제가 아니다. 골목상권의 붕괴는 지역 고용과 세수, 주거 환경, 공동체 구조까지 연쇄적으로 흔든다. C커머스가 몰고 온 파장이 어디서 멈출지, 아직 아무도 그 끝을 가늠하지 못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