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마포구의 한 골목. 30대 직장인 A씨는 장을 보러 나가면서 천 가방과 유리 용기를 챙긴다. 두부는 직접 용기에 담고, 채소는 낱개로 고른다. 비닐 포장재 하나 없이 장바구니를 채우는 데 걸리는 시간은 평소보다 20분쯤 더 걸린다. 그 20분이 그에게는 '실천'이다. 1년 전부터 제로 웨이스트 생활을 시작한 A씨가 지난 한 해 동안 배출한 쓰레기는 일반 성인 평균의 4분의 1 수준으로 줄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 노력에도 한계는 명확했다. 온라인에서 주문한 물건은 여전히 두꺼운 에어캡과 종이 박스로 도착했고, 편의점에서 산 음료에는 반드시 빨대가 꽂혔다. 개인의 의지로는 닿지 않는 지점, 그 벽에서 제로 웨이스트 운동의 진짜 싸움이 시작된다.

숫자로 본 쓰레기의 무게

국내에서 한 해 발생하는 폐플라스틱 양은 수백만 톤에 달한다. 이 가운데 실제로 재활용되는 비율은 절반을 밑돌고, 나머지는 매립되거나 소각된다. 환경부 자료에 따르면 코로나19 이후 배달·포장 수요가 급증하면서 플라스틱 폐기물 발생량은 이전보다 크게 늘었다가 소폭 감소세로 접어들었지만, 구조적 증가 흐름 자체는 꺾이지 않았다는 분석이 나온다.

1인당 플라스틱 소비량에서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상위권에 속한다. 독일·핀란드 등 유럽 선진국들이 포장재 감량 목표를 법제화하고 재활용 인프라에 수십 년 투자를 쌓아온 것과 대비된다. 독일은 포장재법(VerpackG)을 통해 제조사에 재활용 의무 비율을 명시하고, 위반 시 과태료를 부과한다. 핀란드의 빈 병 보증금 회수율은 90%를 넘는다. 개인의 선한 의지가 아니라 시스템이 행동을 끌어내는 구조다.

제도의 빈틈이 실천의 천장

국내에서도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EPR)가 운영되고 있다. 포장재를 생산하는 기업이 재활용 비용을 분담하는 구조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분담금 수준이 실제 재활용 처리 비용에 비해 낮고, 재활용이 어려운 복합 소재 포장재에 대한 제재가 약하다는 지적이 꾸준히 나온다. 결국 분리배출을 열심히 해도 선별 과정에서 재활용 불가 판정을 받고 소각로로 직행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소비자 입장에서도 제로 웨이스트 실천은 '비용'이 따른다. 포장 없는 제품을 살 수 있는 무포장 가게는 전국적으로 손에 꼽을 정도로 적고, 리필 스테이션을 갖춘 마트는 대형 유통사 일부로 제한된다. 시간·비용·접근성 세 가지 장벽이 동시에 작동하는 셈이다. 제로 웨이스트가 소수 열성 실천자의 생활 양식으로만 머무는 이유다.

일부 지방자치단체가 공공기관 내 일회용품 사용 금지, 지역 축제 다회용기 도입 등을 시도하고 있지만, 이를 민간 소비 영역으로 확장하는 데는 규제 설계가 선행돼야 한다. 포장재 단순화 의무, 재활용 가능 소재 사용 기준 강화, 과도한 포장에 대한 환경 부담금 부과 등이 논의 테이블에 오르고 있다.

쓰레기 없는 사회는 유토피아인가

완전한 '제로 웨이스트'는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전문가들은 '제로'라는 목표 자체보다 방향성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덜 쓰고, 오래 쓰고, 되살려 쓰는 순환의 속도를 높이는 것. 그 흐름을 만들어내는 것은 결국 개인의 실천과 제도의 뼈대가 맞물릴 때다.

A씨는 요즘 동네 이웃 몇 명과 함께 공동구매로 무포장 농산물을 나누기 시작했다. 혼자 할 때보다 힘이 덜 들고, 배달 포장도 줄었다. 작은 연대가 만들어낸 미세한 변화다. 문제는 이 미세한 변화가 사회 전체의 구조를 바꾸는 임계점에 도달하려면, 개인의 장바구니 너머에서 무언가가 함께 움직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 무언가가 아직은 충분히 빠르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