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밀이 수건이 걸려 있던 자리엔 이제 '임대 문의' 현수막이 펄럭인다. 서울 은평구의 한 골목, 30년 넘게 동네 주민들의 때를 밀어주던 목욕탕이 지난봄 셔터를 내렸다. 탕 안에는 타일 사이로 물때가 그대로 굳어 있었고, 수도꼭지는 녹이 슬어 있었다. 업주는 마지막 날 간판을 직접 손으로 떼어냈다고 했다. "전기요금 고지서가 한 달에 400만 원을 넘어서면서부터였어요. 손님은 절반도 안 되는데."

이 장면은 전국 곳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재현되고 있다. 보건복지부 집계에 따르면 전국 목욕장업 영업소는 2001년 1만 98곳으로 정점을 찍은 뒤 지속적으로 줄어, 2025년 기준 5,656개소까지 떨어졌다. 24년 사이 약 44%가 사라진 셈이다. 하루 평균으로 환산하면 거의 매일 한 곳씩 문을 닫아온 것과 다름없다.

에너지 비용과 인구 감소, 두 개의 칼날

동네 목욕탕을 옥죄는 힘은 크게 두 방향에서 온다. 첫째는 에너지 비용이다. 목욕탕은 구조적으로 에너지 다소비 업종이다. 물을 데우고, 실내를 달구고, 24시간 가동해야 하는 보일러는 업소 운영비의 30~50%를 차지하는 것으로 업계에서는 추산한다. 국제 유가가 출렁일 때마다 가장 먼저 직격탄을 맞는 것이 이들 소규모 탕업소다. 대형 찜질방처럼 부가 매출로 버틸 구조도 아니다.

둘째는 인구다. 고령화와 저출생이 겹치면서 지방 소도시와 구도심의 유동 인구 자체가 쪼그라들었다. 욕실이 없는 낡은 연립·다가구 주택을 허물고 신축 아파트를 올리는 재개발 사업도 역설적으로 목욕탕의 기반을 무너뜨린다. 내 집 욕실에서 씻는 게 일상이 되면서, 목욕탕은 '특별한 날의 여가'로 성격이 바뀌었다. 그러나 여가 시장에서 동네 목욕탕이 스파·찜질방·사우나 프랜차이즈와 경쟁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복지의 구멍 — 목욕탕이 사라진 자리

문제는 동네 목욕탕이 단순한 위생 시설이 아니었다는 데 있다. 독거노인, 장애인, 고시원 거주자, 쪽방촌 주민처럼 가정 내 욕실 환경이 열악한 이들에게 동네 탕은 사실상 유일한 청결 인프라였다. 목욕탕이 문을 닫으면 이 인구들은 단순히 불편해지는 게 아니다. 기초적인 위생을 유지할 수단 자체가 사라진다.

지방자치단체 일부는 '공중목욕탕 지원 사업'을 통해 저소득층에게 목욕 이용권을 지급해 왔지만, 이용권을 쓸 목욕탕이 동네에서 사라지고 있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복지 수단이 있어도 인프라가 없으면 무용지물이다. 지방 소도시에서는 읍내 유일의 목욕탕이 폐업하면서 고령 주민들이 수십 킬로미터를 이동해야 하는 상황도 보고되고 있다.

일본은 이 문제를 한발 먼저 경험했다. 도쿄도는 2000년대 들어 공중욕장(銭湯)의 급감을 목격하고, 문화재적 가치가 있는 시설을 지정 보전하거나 지자체가 직접 운영하는 형태로 전환하는 정책을 시행했다. 입욕료 상한선을 조례로 규정하면서도 에너지 보조금을 지급하는 방식이다. 한국에서도 이러한 공공욕탕 모델의 실효성을 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복지계와 지방행정 전문가 사이에서 나오고 있다.

남은 탕들의 미래

살아남은 목욕탕들은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생존을 모색하고 있다. 황토방·소금방 등 특화 시설로 프리미엄 고객을 끌거나, 지역 문화 공간으로 탈바꿈하는 사례도 있다. 서울 일부 지역에서는 목욕탕 건물을 리모델링해 카페나 복합문화시설로 재생하는 프로젝트가 진행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전환은 자본력 있는 일부 업소에만 가능한 선택지다.

정부와 지자체 차원의 대응은 아직 뚜렷한 방향을 잡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취약계층을 위한 위생 인프라를 시장에만 맡겨둘 수 없다는 것은 이미 수치로 입증됐다. 5,656개. 24년 전 정점의 절반을 간신히 넘기는 숫자 앞에서, 다음 24년을 어떻게 설계할 것인지를 지금 묻지 않으면 때는 이미 늦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