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에 빈집이 13만 4,009호 있다. 그중 7만 8,095호, 전체의 58%가 농어촌에 있다. 지붕이 내려앉고 잡초가 마당을 덮은 채, 주인도 없고 세입자도 없는 집들이다. 지자체는 철거 예산을 쏟아붓고, 주민은 흉물스럽다고 민원을 넣는다. 그런데 여기서 한 번 뒤집어 생각해 보자. 이 집들이 정말 '처치 곤란한 짐'인가, 아니면 우리가 아직 값을 매기지 못한 자산인가.
철거가 능사라는 통념은 편리하다. 눈앞의 흉물을 없애면 문제가 해결된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농어촌 빈집을 밀어낸 자리에 무엇이 들어서는지를 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대부분 그냥 빈 땅이 된다. 인구가 계속 줄어드는 지역에 새 건물이 들어설 투자 수요는 없다. 철거는 문제를 없애는 게 아니라, 집이 사라진 뒤 남는 공터라는 다른 형태의 방치로 바꾸는 것에 불과하다.
반면 빈집을 활용 가능한 자원으로 보면 그림이 바뀐다. 귀촌을 꿈꾸는 도시 직장인이 가장 먼저 맞닥뜨리는 장벽은 주거 비용이다. 농촌에 땅을 사고 집을 짓는 데 드는 초기 비용은 결코 만만하지 않다. 그런데 이미 골조가 있는 빈집이 13만 채 넘게 비어 있다. 리모델링 비용과 세제 혜택을 묶어 귀촌 희망자에게 연결하는 구조를 만든다면, 빈집은 귀촌의 진입 장벽을 낮추는 통로가 된다.
일본은 이 방향을 먼저 걸었다. 지자체마다 「아키야 뱅크(空き家バンク)」를 운영해 빈집 정보를 공개하고, 이주자에게 보조금과 세금 감면을 동시에 제공한다. 한국의 일부 지자체도 비슷한 시도를 하고 있지만, 제도의 파편화가 문제다. 빈집 정비는 국토부 소관, 귀농·귀촌 지원은 농식품부 소관, 세제 혜택은 기재부가 쥐고 있다. 각각 따로 움직이니 현장에서는 연결이 되지 않는다. 귀촌을 원하는 사람과 활용 가능한 빈집이 같은 지역에 존재하면서도 서로를 찾지 못하는 기이한 미스매치가 계속된다.
세제 측면의 접근도 필요하다. 빈집을 방치하는 소유자 중 상당수는 팔거나 임대할 의지 자체가 없는 게 아니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거나 절차가 번거로워 손을 놓은 경우다. 빈집을 귀촌자에게 저가로 임대하거나 매각할 때 양도세·취득세 감면 혜택을 실질적으로 부여한다면, 소유자 입장에서도 방치보다 활용이 합리적 선택이 된다. 지금처럼 방치해도 별다른 불이익이 없는 구조에서는 움직일 유인이 없다.
물론 빈집 전부가 리모델링 가능한 상태는 아니다. 구조 안전에 문제가 있는 집은 철거가 맞다. 그러나 그 판단을 내리기 전에, 먼저 활용 가능성을 따져보는 단계가 선행되어야 한다. 지금은 그 순서가 뒤집혀 있다. 철거 예산은 있고 활용 예산은 없다.
13만 채의 빈집은 인구 소멸의 흔적이다. 하지만 흔적이 곧 폐기물인 건 아니다. 어떤 도시의 낡은 창고가 지금 가장 핫한 문화 공간이 된 것처럼, 농어촌 빈집도 다음 이야기의 무대가 될 수 있다. 그 전환을 만드는 건 결국 제도의 상상력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