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연속 이자도 못 갚는 기업이 국내 전체 기업의 17%를 넘는다. 10곳 중 거의 2곳이 사실상 시장에서 퇴출됐어야 할 기업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이 기업들은 여전히 거래소에 이름을 올리고, 투자자들의 돈을 빨아들이고 있다. 정부가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위해 '밸류업'을 외치는 동안, 시장의 한쪽에서는 좀비 기업들이 지수를 짓누르고 지수의 신뢰를 갉아먹는다.
밸류업 공시, 절반의 처방
2024년 금융당국이 도입한 기업가치 제고 공시, 이른바 '밸류업 공시'는 상장사들이 자율적으로 주주환원·자본효율 개선 계획을 밝히는 제도다. 일본이 도쿄증권거래소를 앞세워 PBR 1배 미만 기업에 개선 압력을 넣은 방식을 벤치마킹했다. 실제로 일본은 이 조치 이후 닛케이225 지수가 수십 년 만에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국내 당국도 그 성공 방정식을 이식하려 했다.
그러나 일본과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있다. 일본 거래소는 PBR 1배 미만 기업에 공시를 '사실상 강제'하는 압박 구조를 만들었다. 한국의 밸류업 공시는 어디까지나 자율이다. 기업이 공시하지 않아도 제재가 없다. 공시를 해도 이행 검증이 느슨하면 선언으로 끝난다. 「자율 공시는 시작일 뿐, 그것만으로는 구조적 할인을 걷어낼 수 없다」는 지적이 시장 안팎에서 나오는 이유다.
진짜 문제는 퇴출되지 않는 기업들
이자보상배율이 3년 연속 1 미만이라는 것은, 영업이익으로 이자비용조차 감당하지 못하는 상태가 3년 넘게 지속됐다는 의미다. 이런 기업들이 시장에 계속 존재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나. 투자자 입장에서 국내 증시의 '옥석 가리기'가 근본적으로 어려워진다. 지수 자체가 부실 자산의 집합이 되고, 외국인 투자자들은 한국 시장 전체에 구조적 할인율을 적용한다.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개별 기업의 소통 부재 문제가 아니라, 시장 생태계의 신뢰 문제다.
현행 상장폐지 제도는 재무 기준·감사의견 미달 등 형식 요건 중심으로 설계돼 있다. 한계기업이 각종 자금 조달과 주식 발행을 반복하며 폐지 요건을 피해가는 관행도 오래됐다. 신규 자본을 끌어들여 단기적으로 재무 수치를 맞추고, 그 사이 소액 투자자 피해는 누적된다. 시장이 스스로 정화되는 메커니즘이 작동하지 않는 것이다.
시장 정화 없는 밸류업은 빈 그릇
밸류업과 한계기업 퇴출은 별개의 정책처럼 보이지만, 실은 동전의 양면이다. 우량 기업이 아무리 주주환원을 늘리고 투명한 공시를 해도, 같은 시장 안에 좀비 기업들이 섞여 있으면 시장 전체의 밸류에이션이 왜곡된다. 외국인 기관투자자들이 한국 증시를 볼 때 가장 먼저 묻는 질문 중 하나가 「이 시장에서 부실 기업이 얼마나 빨리, 투명하게 퇴출되는가」라는 점은 이미 업계에서 알려진 사실이다.
전문가들은 몇 가지 방향을 제시한다. 첫째, 한계기업 판별 기준을 정밀화하고 상장 유지 심사 주기를 단축해야 한다는 것. 둘째, 퇴출 후 투자자 보호 절차를 강화해 퇴출 자체에 대한 시장의 두려움을 낮춰야 한다는 것. 셋째, 밸류업 공시에 최소한의 이행 의무와 사후 점검을 연동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어느 하나만으로는 부족하다. 세 축이 동시에 작동해야 한다.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단순히 '저평가'의 문제로 보면 처방이 공시 개선에 머문다. 그러나 그것을 '시장 신뢰의 문제'로 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신뢰는 좋은 기업을 보여주는 것만으로 쌓이지 않는다. 나쁜 기업이 제때 퇴장하는 모습을 반복적으로 보여줄 때 비로소 쌓인다. 밸류업 공시를 채우는 것과, 시장 바닥을 청소하는 것. 둘 다 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