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마포구의 한 1인 미디어 스튜디오. 영상 편집을 마친 콘텐츠 창작자 A씨(34)는 조회수 그래프 대신 다른 화면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포털 검색 유입량이다. 2년 전까지만 해도 네이버 상단에 노출되면 하루 수만 건의 트래픽이 자동으로 따라왔다. 지금은 다르다. 「챗GPT에서 답 얻고 끝나버리니까, 제 글로 오는 사람이 절반 가까이 줄었어요.」 A씨가 한숨처럼 꺼낸 말이 지금 국내 콘텐츠 생태계의 현실을 압축한다.
오픈AI의 챗GPT, 구글의 제미나이, 네이버의 클로바X까지 — 생성형 AI 검색 도구들이 본격적으로 사용자의 정보 탐색 방식을 바꾸고 있다. 이용자는 포털 검색창에 키워드를 입력하고 링크를 클릭하는 대신, AI에게 질문을 던지고 요약된 답변을 받는다. 클릭이 사라지면 트래픽이 사라지고, 트래픽이 사라지면 광고 수익도 무너진다. 이 단순한 연쇄가 20년 넘게 유지돼온 국내 포털 중심 인터넷 생태계의 토대를 뒤흔들고 있다.
네이버의 '검색 왕좌'가 흔들리는 구조적 이유
네이버는 국내 검색 시장에서 오랫동안 60~70%대 점유율을 유지해왔다. 하지만 그 점유율의 실질적 가치가 희석되고 있다. 핵심은 '제로클릭(zero-click)' 현상이다. AI가 검색 결과 상단에서 답을 직접 제시하면, 사용자는 원문 링크를 열지 않는다. 언론사와 블로거, 지식iN 답변자 등 콘텐츠 생산자들이 네이버 생태계 안에서 트래픽과 광고 수익을 나눠 갖는 구조 자체가 흔들리는 것이다.
구글은 이미 이 변화의 진원지가 됐다. 구글이 'AI 오버뷰(AI Overviews)' 기능을 글로벌 검색에 도입한 뒤, 미국의 복수 미디어 분석 기관들이 뉴스·정보성 사이트의 구글 유입 트래픽이 눈에 띄게 감소했다고 분석했다. 국내에서도 유사한 흐름이 감지되고 있다. 포털 검색의 양은 유지되더라도, 그 검색이 실제 콘텐츠 소비로 이어지는 비율이 낮아지는 구조적 변화다.
콘텐츠 원본 없이는 AI도 없다 — 라이선스 전쟁의 서막
아이러니하게도 AI 검색이 소비하는 자원은 결국 인간이 만든 콘텐츠다. 이 지점에서 전통 언론사들의 반격이 시작됐다. 오픈AI는 2024년 6월 뉴스코퍼레이션과 5년 단위의 콘텐츠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했다. 계약 규모는 2억 달러(약 2,700억 원) 이상으로 알려졌다. AI 학습과 검색 결과 인용에 뉴스 콘텐츠를 활용하는 대가를 언론사에 지급하는 구조다. 뉴욕타임스가 오픈AI와 마이크로소프트를 상대로 저작권 소송을 제기한 것과는 정반대의 협상 전략이다. 싸울 것이냐, 거래할 것이냐 — 언론사들의 선택이 갈리고 있다.
국내 언론사들은 아직 이 흐름에서 한 발짝 뒤에 서 있다. 네이버·카카오 등 국내 플랫폼과의 뉴스 제휴 수익 구조에 익숙한 상황에서, AI 학습 데이터 라이선스라는 개념은 여전히 낯설다. 일부 대형 언론사들이 국내 AI 기업들과 개별 협의를 진행하는 것으로 전해지지만, 업계 표준이 될 만한 기준은 아직 없다. 한국언론진흥재단 등을 중심으로 공동 대응 논의가 오가고 있으나 속도는 더디다.
창작자 생존 전략 — 「도달」에서 「관계」로 무게추 이동
포털 트래픽 의존에서 벗어나는 창작자들의 생존 전략은 뚜렷한 방향을 보인다. 뉴스레터, 유료 멤버십, 커뮤니티 기반 구독 모델이 그것이다. AI가 대체하기 어려운 것은 특정 필자의 관점, 취재 네트워크, 커뮤니티 감각이다. 서브스택(Substack) 같은 플랫폼이 글로벌에서 급성장한 배경도 여기 있다. 국내에서도 독립 뉴스레터 창작자들이 수천에서 수만 명의 유료 구독자를 직접 확보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포털 역시 손 놓고 있지 않다. 네이버는 AI 검색 기능을 고도화하면서도, 자사 플랫폼 내 창작자 생태계(블로그·포스트·카페)와 AI를 연결하는 방식으로 이탈을 막으려 한다. 검색 엔진이 AI 에이전트로 진화하는 과정에서 플랫폼이 얼마나 양질의 로컬 콘텐츠를 확보하느냐가 경쟁력을 가를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포털이 '광장'이었다면, AI 검색 시대의 플랫폼은 '비서'에 가깝다. 비서는 광장의 소음을 필터링하고 요약해 준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원본을 만든 사람에게 아무것도 돌아가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콘텐츠가 AI를 먹이고, AI가 콘텐츠 생산자를 굶기는 역설 — 이 구조를 어떻게 재설계하느냐가 향후 몇 년간 국내 미디어 산업이 풀어야 할 진짜 과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