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지하철 14호선 승객들이 스마트폰 화면을 세로로 스크롤한다. 옆자리 승객의 화면에도, 맞은편 청년의 손에도 같은 앱이 떠 있다. 네이버웹툰이다. 유럽에서 가장 두꺼운 만화 독자층을 자랑하는 프랑스에서, 한국산 세로 스크롤 만화가 기존 질서를 뒤흔들고 있다.

앱 분석 플랫폼 data.ai가 집계한 2024년 1월 기준 수치는 단순한 점유율이 아니라 압도에 가깝다. 프랑스 웹툰 앱 시장에서 네이버웹툰의 매출 점유율은 51.02%, 월간 활성 사용자 수(MAU) 점유율은 79%에 달한다. 두 명 중 한 명이 돈을 네이버웹툰에 쓰고, 앱을 켜는 사람 네 명 중 세 명이 네이버웹툰 사용자라는 뜻이다.

왜 프랑스인가 — 세계 3위 만화 시장의 균열

프랑스는 일본, 미국과 함께 세계 3대 만화 시장으로 꼽힌다. 앙굴렘 국제만화페스티벌은 반세기 넘게 유럽 만화 문화의 상징으로 자리했고, 프랑스 독자들은 벨기에·프랑스 전통 BD(반데시네)와 일본 망가를 함께 소비하며 만화에 대한 높은 안목과 지불 의사를 키워 왔다. 이 시장에서 웹툰이 발판을 마련했다는 건, 단순한 수출 성공이 아니다. 콘텐츠 형식 자체의 경쟁에서 이겼다는 신호다.

프랑스 시장 공략의 핵심은 스마트폰 환경에 최적화된 세로 스크롤 포맷이었다. BD는 대형 판형의 고급 앨범 형식, 망가는 책으로 소비하는 구조다. 두 형식 모두 화면을 가로로 넘기거나 페이지를 물리적으로 넘겨야 한다. 반면 웹툰은 엄지손가락 하나로 흘러내린다. 통근 시간, 점심 휴식, 잠들기 전 10분—이 틈새를 웹툰이 채웠다.

현지화 전략 — 번역을 넘어 문화적 접점으로

그러나 포맷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 프랑스어 현지화의 품질이 결정적이었다는 분석이 업계에서 나온다. 네이버웹툰은 프랑스 시장 진출 초기부터 단순 기계 번역이 아닌, 현지 독자의 언어 감각에 맞는 번역에 공을 들였다. 특히 젊은 독자층이 쓰는 구어체 표현과 유머 코드를 살린 번역이 현지 팬덤 형성에 기여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장르 구성도 맞아떨어졌다. 프랑스 젊은 독자들 사이에서 로맨스 판타지, 이세계물, 액션 스릴러 장르가 폭발적 반응을 얻었다. 이미 망가를 통해 이 장르에 익숙해진 독자들이 웹툰이라는 새 형식으로 갈아탄 셈이다. 망가의 문법을 알면서도 디지털 경험에 열린 10~20대가 핵심 수용층이 됐다.

카카오엔터테인먼트 역시 유럽 시장에서 존재감을 확대하고 있다. 카카오의 웹툰·웹소설 플랫폼이 프랑스를 포함한 유럽 각국에서 이용자 기반을 넓히면서, 한국 플랫폼들이 사실상 유럽 디지털 만화 시장의 틀을 새로 짜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과제와 전망 — 뿌리를 내리려면

성과가 뚜렷한 만큼 과제도 선명하다. 웹툰 플랫폼의 수익 모델은 '기다리면 무료'로 대표되는 부분 유료화 방식인데, 이 구조가 장기적으로 창작자 수익을 얼마나 보장할 수 있느냐는 물음이 남는다. 프랑스 현지 작가들과의 협업 확대, 유럽 창작자 생태계와의 연결도 지속 성장을 위한 변수다. 한국 플랫폼이 유통망을 쥔 채 콘텐츠 공급만 한국에서 이뤄지는 구조가 지속되면, 현지 뿌리가 얕다는 비판이 언제든 불거질 수 있다.

프랑스 BD 출판사들과 기존 만화 유통망의 반응도 지켜봐야 한다. 일본 출판사들이 망가의 디지털 전환을 수십 년 미루다 뒤늦게 속도를 내는 것처럼, 기존 강자들이 웹툰 형식을 빠르게 흡수하기 시작하면 경쟁 지형이 달라진다. 반세기 가까운 앙굴렘의 전통이 세로 스크롤 화면 앞에서 어디까지 변할지—프랑스 만화 시장의 지각 변동은 이제 막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