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킨집 사장 A씨는 매달 정산 문자를 두 번 확인한다. 처음엔 매출을 보고, 두 번째엔 수수료를 뺀 실수령액을 본다. 두 숫자 사이의 간격이 벌어질수록 그의 한숨도 깊어진다. 배달 매출이 늘어도 손에 쥐는 돈이 줄어드는 이 기묘한 역설을 그는 「열심히 팔수록 가난해지는 구조」라 부른다.
2024년 11월, 정부 주도로 구성된 배달플랫폼-입점업체 상생협의체가 합의안을 내놨다. 배달의민족과 쿠팡이츠는 매출 상위 35%에 해당하는 업체에 7.8%, 중위(35~80%) 구간에 6.8%의 차등 수수료를 적용하기로 했다. 하위 20% 소규모 업체에는 더 낮은 요율을 적용하는 구조다. 대형 플랫폼이 스스로 칼날을 거둔 것처럼 보이지만, 자영업자 단체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생색내기」라는 말이 거리낌 없이 나왔다.
그 냉소를 무조건 감정적 반응으로 치부할 수는 없다. 수수료 외에 광고비, 배달료 분담, 포장재 비용까지 합산하면 실질 부담률이 20%를 훌쩍 넘는다는 업계 분석이 적지 않다. 식재료값이 오르고 최저임금이 오르는 사이, 수수료만은 협상의 영역 밖에 있었다. 플랫폼이 시장을 장악한 이후, 입점은 사실상 선택이 아닌 강제가 됐다. 배달앱에 없으면 존재하지 않는 것과 다름없는 시대가 됐기 때문이다.
물론 플랫폼 기업의 논리도 귀 기울일 여지가 있다. 수백만 건의 주문을 처리하는 기술 인프라, 라이더 네트워크, 마케팅 비용은 결코 공짜가 아니다. 수수료는 그 대가다. 스타트업으로 출발해 수조 원의 투자를 유치하며 성장한 이들에게 수익성은 생존의 문제이기도 하다. 이 점을 부정하면 논의는 감정 싸움으로 끝난다.
그러나 플랫폼이 시장 지배력을 바탕으로 수수료를 결정하는 구조는 공정한 협상이 아니다. 중세 유럽의 영주가 강을 건너는 상인에게 통행세를 매겼던 방식과 본질이 다르지 않다. 다리가 하나뿐일 때, 통행세는 협상이 아니라 징수다. 지금 배달앱 시장의 구조가 그렇다. 두세 개 플랫폼이 시장의 절대적 몫을 나누고, 입점 업체는 그 안에서 조건을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다.
제도적 대안은 이미 논의 테이블 위에 올라와 있다. 수수료 상한제를 법제화하고, 플랫폼과 입점업체 간 계약 조건을 표준화하며, 상생협의체를 상설 기구로 전환하는 방안이 대표적이다. 공공 배달앱 모델도 재검토할 시점이다. 일부 지자체가 운영하는 공공 플랫폼이 점유율 확보에 어려움을 겪은 건 사실이나, 민간 독점을 견제하는 레버리지 역할만으로도 존재 가치가 있다. 경쟁이 없을 때 독점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
상생협의체 합의를 폄훼하는 게 아니다. 다만 합의는 출발점이어야지, 종착점이 되어선 안 된다. 수치로 표현된 수수료율 뒤에는 새벽에 배달 오더를 확인하며 하루를 시작하는 수십만 명의 삶이 있다. 플랫폼이 성장할수록 그 아래 골목식당이 함께 자라야 생태계가 지속된다. 뿌리를 갉아먹는 나무는 오래 서 있지 못한다.
시장이 스스로 답을 찾지 못할 때, 제도가 경계를 그어주는 것은 개입이 아니라 설계다. 지금 이 갈등이 단순한 수수료 다툼으로 기억되지 않으려면, 국회와 정부가 그 설계도를 진지하게 펼쳐 들어야 할 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