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 후 아내와 조용히 노후를 보내려 했던 62세 김모 씨는 3년 전 뇌졸중으로 쓰러진 어머니를 요양병원에 모신 뒤 삶이 완전히 달라졌다. 월 300만 원을 웃도는 간병비와 병원비. 국민연금 수령액의 두 배가 넘는 금액이 매달 빠져나간다. 적금을 깼고, 퇴직금도 바닥났다. 집을 담보로 대출까지 받았다. "어머니를 모시는 게 잘못된 일도 아닌데, 왜 우리 가족이 이렇게 무너져야 하냐"는 그의 말이 무겁게 가라앉는다.
김 씨의 사정은 특별하지 않다. 한국이 초고령사회 진입을 목전에 둔 지금, 수십만 가구가 비슷한 압박을 받고 있다. 노인 한 명의 장기 간병이 가족 전체를 빈곤층으로 끌어내리는 이른바 '간병 파산'이다. 예고된 재앙이지만,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가계가 늘고 있다.
사적 부담으로 전가된 간병비, 중산층을 직격
한국의 간병 체계에는 구조적 공백이 있다. 건강보험은 의료 행위에 적용되지만, 요양병원과 요양원에서 발생하는 간병인 비용은 대부분 비급여 영역이다. 가족이 직접 돌보지 않으면 월 150만~300만 원에 달하는 사적 간병비를 고스란히 짊어져야 한다. 치매나 중풍처럼 수년간 지속되는 질환이라면 누적 비용은 수천만 원을 넘는다.
저소득층은 기초수급자 혜택이라도 받지만, 중산층은 지원의 사각지대에 놓인다. 재산 기준에 걸려 공적 지원을 받지 못하면서도, 실제로는 간병비를 감당할 여력이 없는 가구가 적지 않다. 은퇴 후 소득이 급감한 50·60대가 부모 간병을 떠안는 구조에서는 더욱 그렇다. 가족 중 한 명이 간병을 전담하기 위해 일을 그만두면, 그 손실은 곧바로 가계 소득 감소로 이어진다. 간병이 부양자를 경제적으로 고립시키는 이중 함정이다.
정부 대책, 방향은 맞지만 속도가 문제
정부도 손을 놓고 있지만은 않다. 보건복지부는 2024년 7월부터 요양병원을 대상으로 간병비 지원 시범사업을 시작했다. 장기적으로는 2030년까지 중증 환자의 요양병원 간병비 본인부담률을 30% 수준으로 낮추겠다는 목표도 제시했다. 현재 환자 가족이 사실상 전액을 부담하는 구조에서 국가가 일부를 책임지겠다는 신호다.
그러나 시범사업 단계에 머물고 있다는 점에서 현장의 체감 속도는 더디다. 급격한 고령화 속도와 재정 부담 사이에서 정책 전환이 쉽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간병 인력의 절대 부족도 난관이다. 지원 예산을 늘려도 현장에서 환자를 돌볼 인력이 없으면 정책은 공회전한다. 요양보호사 처우 개선과 인력 확충이 간병비 지원과 동시에 추진돼야 한다는 지적이 전문가들 사이에서 나오는 이유다.
개인 책임으로 남겨둔 사회적 위험
독일은 1995년 수발보험(Pflegeversicherung)을 도입해 장기요양 비용을 사회보험으로 분산했다. 일본 역시 2000년부터 개호보험 제도를 운용하며 가족 간병에 따른 경제적 충격을 완충해왔다. 한국도 2008년 노인장기요양보험을 출범시켰지만, 여전히 간병인 비용이 급여 밖에 있다는 점에서 제도의 빈틈이 크다. 보험료는 내지만, 정작 가장 비싼 비용은 여전히 개인 몫이다.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의 20%를 넘는 초고령사회는 통계청 기준으로 2025년 전후 현실이 된다. 이 말은 곧 간병 수요가 지금보다 훨씬 빠르게 늘어난다는 뜻이다. 가계가 버텨줄 것을 전제로 설계된 간병 체계는 한계에 다가서고 있다. 노후 준비를 성실히 해온 중산층이 부모 한 명의 장기 투병으로 노후 자산을 소진하는 현실. 이것이 지속된다면, 다음 세대는 부모 간병에 이어 자신의 노후까지 사적으로 감당해야 하는 이중 부담을 안게 된다. 간병은 가족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가 설계해야 할 위험이다. 그 설계가 늦어질수록, 침묵하는 파산은 더 많은 가정의 문을 두드릴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