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한국 수출 화물의 4분의 1 이상이 중국으로 향했다. 26.1%. 그 숫자는 단순한 통계가 아니라 하나의 세계관이었다. '차이나 익스프레스'라 불리던 고속 성장의 열차에 한국은 가장 좋은 좌석을 차지하고 앉아 있었다.
그 좌석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한국무역협회 집계에 따르면 2024년 기준 대중국 수출 비중은 19.5%로 떨어졌다. 10년 사이 약 6%포인트가 증발했다. 같은 기간 미국 비중은 18.7%까지 올라와 중국을 턱밑에서 추격한다. 두 강대국이 나란히 한국의 운명을 쥐고 서 있는 형국이다. 문제는 이 두 나라가 지금 서로를 향해 총구를 겨누고 있다는 것이다.
고대 항해사들은 두 거대한 암초 사이를 지나는 좁은 해협을 '스킬라와 카리브디스'라 불렀다. 어느 쪽으로 붙어도 배가 산산조각 난다. 미중 갈등이 격화되는 지금, 한국의 수출 기업들이 처한 지형이 꼭 그 모양이다. 미국 시장에 집중하면 중국의 보복 위험을 안고, 중국에 기대면 미국의 공급망 배제 압력에 노출된다. 중립을 지키려 해도 양측 모두 '편을 가르라'고 다그친다.
물론 일각에서는 위기를 과장하지 말라고 한다. 미중 어느 쪽도 한국과의 경제 관계를 단칼에 끊을 수 없으며, 지정학적 긴장이 실제 무역 절단으로 이어지기까지는 완충 구간이 있다는 논리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그 '완충'을 믿고 아무것도 바꾸지 않는 것은, 지진이 나지 않을 것이라 믿으며 내진 설계를 미루는 것과 다르지 않다.
해법의 방향은 이미 나와 있다. 문제는 속도와 의지다. HD현대건설기계가 인도를 거점 삼아 중동·아프리카 시장을 공략하듯, 개별 기업 수준에서 이미 탈중국·탈미국 편중의 실험이 시작됐다. 인도·동남아시아·중동·아프리카를 아우르는 이른바 '글로벌 사우스'는 2030년대 세계 소비 성장의 60% 이상을 담당할 것으로 분석된다. 수출 포트폴리오를 이쪽으로 분산하는 것은 리스크 회피가 아니라 성장 기회의 선점이다.
그러나 시장 다변화만으로는 반쪽짜리 답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공급망 내 한국의 위치다. 반도체·배터리·소재 분야에서 한국이 대체 불가한 핵심 노드가 되어야만, 미국도 중국도 한국을 함부로 배제하지 못한다. EU와 독일·네덜란드가 미국 주도의 AI 공급망 재편에 합류하는 흐름 속에서, 한국은 첨단 기술 동맹의 중심에 자리를 잡거나 주변부로 밀려나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중간은 없다.
넷플릭스 비영어 드라마 순위 정상을 3주째 지키는 한국 콘텐츠처럼, 문화 산업은 이미 지정학의 그늘을 벗어나 독자적인 글로벌 수요를 만들어내고 있다. 제조업도 그 길을 찾아야 한다. 특정 국가의 호불호가 아니라, 어느 나라도 없애지 못하는 기술력과 신뢰로 스스로를 증명하는 것. 그것이 두 암초 사이를 통과하는 유일한 항법이다.
두 개의 태양이 동시에 뜨면 세상은 불타거나, 아니면 새로운 그늘을 찾는 법을 배운다. 한국에 남은 것은 그 그늘을 선택하는 시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