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비트 누적 회원 1,326만 명. 그 중 548만 명이 2030세대다. 국내 가상자산 시장의 판도를 보여주는 이 숫자는, 동시에 선거 전략가들이 밑줄을 긋는 숫자이기도 하다. 정치권이 가상자산 과세 유예를 반복적으로 꺼내드는 배경에는 이 거대한 청년 투자자 집단이 있다.
국내 가상자산 과세 시행은 수차례 미뤄졌다. 당초 2022년 시행 예정이었던 법안은 2023년으로, 다시 2025년으로 연기됐고, 이후에도 추가 유예 논의가 이어졌다. 매번 유예의 명분으로 등장한 것은 「시장 성숙도 부족」과 「과세 인프라 미비」였지만, 선거 일정과 유예 시점이 겹쳐온 패턴은 그 이면을 짐작하게 한다.
청년 표심, 얼마나 강력한 변수인가
2030세대 548만 명이라는 수치의 무게감을 정확히 가늠하려면 맥락이 필요하다. 국내 20~39세 인구가 약 1,300만 명 수준임을 감안하면, 이 연령대 두 명 중 한 명꼴로 업비트 계정을 보유하고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가상자산은 이미 이 세대에게 주식이나 부동산과 나란히 놓이는 일상적 자산 수단이 됐다.
문제는 이들이 단순한 투자자에 머물지 않는다는 점이다. 2030세대는 선거에서 부동층 비율이 높고, 경제적 이해관계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집단으로 분류된다. 실질 임금 정체, 부동산 진입 장벽, 취업난이 겹친 상황에서 가상자산은 이들이 접근 가능한 몇 안 되는 자산 증식 수단으로 자리잡았다. 과세 유예는 이 집단에게 단순한 세금 면제가 아니라 「국가가 내 투자를 인정한다」는 신호로 읽힐 수 있다. 정치권이 이 카드를 반복해서 꺼내는 이유가 여기 있다.
유예가 반복될수록 시장이 치르는 비용
그러나 과세 유예의 장기화는 시장 구조에 역설적인 부작용을 낳는다. 과세 체계가 확립되지 않으면 기관 투자자의 본격 진입이 지연된다. 글로벌 기관들은 규제 명확성을 시장 참여의 전제 조건으로 본다. 미국이 ETF 승인 이후 가상자산 시장에서 기관 자금이 유입되며 가격 변동성이 완화된 사례는, 제도화가 시장 안정성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보여주는 참조점이다.
국내 시장은 여전히 개인 투자자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다. 이 구조에서는 단기 가격 변동에 취약하고, 대형 손실이 발생할 경우 사회적 충격도 커진다. 과세 인프라 구축과 제도화는 그 자체로 시장의 신뢰도를 높이는 기제인데, 유예가 반복될수록 이 인프라 구축의 유인도 사라진다. 결국 보호받아야 할 청년 투자자들이 규제의 공백 속에 가장 큰 위험에 노출되는 아이러니가 생긴다.
정치적 선택이 남기는 구조적 질문
가상자산 과세 유예를 둘러싼 논의에서 빠져 있는 것은 「언제 과세할 것인가」보다 더 근본적인 질문이다. 과세 기준을 어떻게 설계하고, 손익 통산 범위를 어디까지 인정하며, 거래소와 국세청 간 정보 연동을 어떻게 구축할 것인가. 이 설계도 없이 유예만 반복하면, 결국 과세 시행 시점에 시장이 감당해야 할 충격은 더 커진다.
일본은 가상자산 과세를 일찍 도입했지만 세율과 손익 통산 방식이 투자자에게 과도하다는 비판을 받으며 시장 이탈을 경험했다. 반대로 싱가포르는 자본이득세 미부과 원칙을 유지하며 아시아 가상자산 허브로 자리를 굳혔다. 한국이 어느 모델을 지향하는지는 아직 불분명하다. 유예는 결정을 미루는 것이지, 방향을 정하는 것이 아니다.
548만 명의 청년 투자자를 겨냥한 정치적 계산은 당장의 선거에서 효과를 낼 수 있다. 하지만 제도 설계 없는 유예가 누적될수록, 그 청년들이 투자한 시장의 체력은 조용히 소진된다. 표심을 잡으려는 손이 시장의 뿌리를 흔들고 있는 건 아닌지, 지금이 따져볼 시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