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규제안을 내놓고, 여론이 들끓고, 며칠 만에 철회하거나 유예한다. 해외 직구 규제를 둘러싼 풍경이 딱 그랬다. 어린이 제품과 생활용품을 겨냥한 해외 직구 안전 규제안이 발표되자마자 소비자 반발이 폭발했고, 정부는 결국 한 발 뒤로 물러섰다. 이 장면이 낯설지 않은 이유는 단 하나다. 이런 일이 처음이 아니기 때문이다.

국내 온라인 해외 직접 구매 시장은 해마다 커왔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최근 수년간 직구 규모는 꾸준히 성장세를 이어왔으며, 국내 소비자들이 가격과 품질을 직접 비교해 해외 플랫폼에서 제품을 구매하는 행위는 이미 일상의 한 부분으로 자리잡았다. 알리익스프레스, 테무, 아마존 같은 플랫폼은 단순한 쇼핑 채널이 아니라 국내 유통 가격 구조에 압력을 가하는 경쟁자가 됐다. 이 시장에 규제가 필요한가? 그건 당연히 논의할 수 있다. 문제는 어떻게 논의하느냐다.

이번 규제 혼선의 핵심은 내용보다 과정에 있다. 안전 인증 의무화라는 취지 자체가 틀린 건 아니다. KC 인증을 받지 않은 제품이 아이들 손에 들어가는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는 타당하다. 그런데 그 우려를 정책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소비자 의견 수렴은 생략됐고, 업계 현실 점검도 부실했으며, 파급 효과 분석도 충분하지 않았다. 발표 후에야 현실이 드러났다. 직구로만 구할 수 있는 희귀 의약품이나 특수 식이 제품을 이용하는 소비자들이 직격탄을 맞는다는 사실, 영세 소비자가 체감하는 가격 인상 효과 등이 뒤늦게 수면 위로 올랐다. 먼저 쏘고 나중에 조준한 셈이다.

이런 패턴에는 구조적 원인이 있다. 부처 간 협의보다 선발표가 먼저다. 이해관계자 공청회는 요식 행위로 전락한 지 오래다. 규제 영향 평가 제도가 있지만, 그것이 실질적인 제동 장치로 기능하는지는 회의적이다. 정책이 만들어지는 방 안에 소비자는 없다. 업계 로비와 부처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공간에서, 직구로 생활비를 아끼려는 보통 사람들의 목소리는 처음부터 의제에 없었다.

규제가 필요 없다는 말이 아니다. 안전 기준이 없는 해외 제품이 아무런 검증 없이 들어오는 것은 분명 공백이다. 다만 그 공백을 메우는 방식이 「일단 막고 보자」여서는 안 된다. 어떤 품목을, 어떤 기준으로, 어떤 절차를 거쳐 규제할 것인지 소비자와 업계, 전문가가 함께 테이블에 앉는 과정이 선행돼야 한다. 정책 수립 초안 단계부터 공개하고, 의견을 반영한 수정 과정을 투명하게 기록하는 것은 행정의 부담이 아니라 신뢰의 조건이다.

정부가 규제안을 철회할 때마다 치르는 비용을 생각해 보라. 행정 신뢰가 깎이고, 다음 정책은 처음부터 불신 속에서 시작한다. 졸속 규제 한 번이 만드는 불신은, 그다음에 나오는 합리적 규제마저 여론의 저항 앞에 세운다. 소비자 선택권을 지키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규제 자체를 막는 것이 아니라, 규제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제대로 설계하는 것이다. 그 설계도가 지금 우리에게 없다는 것, 그게 진짜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