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과 지원자가 한 자릿수로 떨어지자, 한 지방 국립대는 폐강 기준을 10명에서 1~2명으로 낮췄다. 폐과를 막기 위한 고육지책이다. 이 숫자가 말해주는 건 학생의 선택권 확대가 아니라, 기초학문의 생존 한계선이 이미 무너지고 있다는 현실이다.

2025학년도 기준, 73개 대학이 무전공 선발을 도입했고 그 인원은 3만 7,000명을 웃돈다. 정부는 이 정책을 학생의 자유로운 전공 탐색이라는 이름으로 밀어붙였다. 취지는 나쁘지 않다. 입시 단계에서 전공을 확정짓는 한국의 경직된 구조가 문제라는 인식 자체는 맞다. 하지만 좋은 취지와 좋은 설계는 별개다.

무전공으로 입학한 학생들은 1~2년 뒤 전공을 선택한다. 결과는 예상 가능했다. 의대·약대에 준하는 취업률과 연봉을 보장하는 학과에 수요가 몰리고, 철학·사학·물리·화학 같은 기초학문 계열은 선택받지 못한다. 시장 논리가 그대로 대학 안으로 들어온 것이다. 대학들은 살아남기 위해 폐강 기준을 낮추고, 교수 충원을 줄이며, 강의 수를 줄이는 쪽으로 반응한다. 학문이 위축되는 건 그 다음 순서다.

문제는 기초학문의 붕괴가 단기에 체감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철학과가 사라져도 당장 사회가 멈추지는 않는다. 그러나 10년, 20년이 지나면 다르다. 기초과학 없이 응용기술이 지탱될 수 없고, 인문학 없이 AI 윤리를 논할 언어가 없다. 지금 우리가 무너뜨리는 건 당장 쓸모없어 보이는 학과가 아니라, 그 위에 세워질 미래의 토대다.

속도를 늦춰야 한다. 무전공 확대를 전면 철회하자는 게 아니다. 다만 어떤 학문을 어느 수준까지 보호할 것인지, 국가가 재정으로 뒷받침할 기초학문의 범위는 어디까지인지, 그 설계 없이 규모만 키운 건 무책임하다. 선진국 대학들이 리버럴아츠 교육을 유지하면서도 기초학문을 고사시키지 않는 건 시장에만 맡기지 않기 때문이다. 독일은 기초과학 분야에 별도 재정 지원 트랙을 두고, 프랑스는 그랑제콜 체계 밖에서도 인문학 연구를 국가가 직접 지탱한다.

한국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나. 대학은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인기학과에 자원을 집중하고, 정부는 선택의 자유라는 구호 뒤에 구조적 책임을 비껴간다. 폐강 기준을 1~2명으로 낮춘 대학의 결정을 탓할 수 없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학과 자체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 구조를 만든 정책에 물어야 한다.

학생에게 자유를 주되, 사라지는 학문의 자리는 누가 메울 것인가.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한 채 무전공 정책을 계속 확대한다면, 자유로운 선택의 결과는 결국 선택지의 축소로 돌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