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11시 22분. 스마트폰 화면이 켜진다. 팀장이 보낸 카카오톡 메시지다. 「내일 오전 보고 자료, 오늘 밤 안에 초안 올려줘요.」 강모 씨(34)는 이미 잠옷으로 갈아입은 상태였다. 그는 노트북을 다시 펼쳤다. 거절할 수 없었다. 메시지를 읽었다는 파란 체크 표시가 이미 떴기 때문이다.
이런 장면이 한국 직장인의 일상에서 얼마나 자주 반복되는지, 숫자가 답한다. 시민단체 직장갑질119가 2025년 10월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응답자의 66%가 최근 1년 안에 퇴근 후나 휴일에 업무 연락을 받은 적이 있다고 밝혔다. 셋 중 둘이 퇴근 이후에도 사실상 업무 대기 상태에 놓여 있다는 뜻이다.
법안은 나왔지만, 현장은 달라지지 않았다
이른바 '연결되지 않을 권리'를 법제화하려는 시도는 국회에서 여러 차례 이뤄졌다. 근로기준법 개정안 형태로 발의된 법안들은 공통적으로 사용자가 근무 시간 외에 전화·문자·메신저 등으로 업무 지시를 하는 행위를 제한하거나, 이를 어길 경우 과태료를 부과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하지만 국회 문턱을 넘은 법안은 아직 없다. 기업의 경영 자율성 침해, 업종별 특수성, 단속의 현실적 어려움 등이 반복적으로 발목을 잡았다.
문제는 법안이 계류되는 사이에도 현장의 관행은 굳어진다는 점이다. 스마트폰과 업무용 메신저가 결합된 구조에서 '퇴근'은 물리적 이동일 뿐, 디지털 연결은 끊기지 않는다. 한 중견기업의 인사 담당자는 「카카오톡 메시지 하나가 구두 지시보다 훨씬 부드럽게 느껴지지만, 받는 사람 입장에서는 명령과 다를 게 없다」고 말한다. 강제성이 없어 보이는 형식이 오히려 거절을 더 어렵게 만드는 역설이다.
프랑스는 어떻게 했나, 그리고 한계는
해외 사례에서 자주 인용되는 것은 프랑스다. 프랑스는 2017년 노동법 개정을 통해 50인 이상 사업장에 '연결 해제권(droit à la déconnexion)'을 도입했다. 사용자와 근로자가 협의해 업무 외 시간의 디지털 접속 기준을 정하도록 의무화한 것이다. 그러나 시행 7년이 지난 지금도 실효성 논란은 현재진행형이다. 협의 의무는 있지만 구체적 위반 시 제재가 약하고, 실제로 관행이 바뀌었느냐는 기업 문화에 달린 문제였다. 제도가 문화를 바꾸지 못할 때 법은 액자 속 문구가 된다.
포르투갈은 한 발 더 나아갔다. 2021년 개정 노동법에서 근무 외 시간에 연락한 고용주에게 벌금을 부과하는 조항을 신설했다. 처벌 규정이 명확하다는 점에서 한국의 논의보다 진전된 형태지만, 중소기업 밀집 구조와 비공식 채용 관행이 많은 환경에서 얼마나 집행력이 있는지는 여전히 검증 중이다.
규제만으로는 반쪽, 문화가 바뀌어야 완성된다
전문가들이 공통으로 지적하는 지점이 있다. 법 조항이 있어도 신고·입증 구조가 허술하면 피해 근로자가 먼저 불이익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야간 카톡을 받고 이를 신고하는 직원은 사실상 조직 내에서 낙인을 감수하는 것」이라는 노동법 전문가의 지적은, 법이 종이 위에 머무는 이유를 압축한다. 연결되지 않을 권리는 개인이 행사하기 전에 조직이 먼저 허용해야 작동한다.
결국 논점은 처벌 규정의 세기가 아니라 구조의 설계다. 업무 지시를 공식 시스템에 남기도록 의무화하고, 관리자의 성과 평가에 부하직원의 '오프타임 침해' 빈도를 반영하는 방식이 대안으로 거론된다. 몇몇 대기업이 자체적으로 도입한 '심야 메시지 발송 차단' 시스템은 규제가 아닌 기술로 경계를 그은 사례다. 하지만 이조차 전체 사업장의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오늘 밤에도 누군가의 화면은 켜진다. 법이 없어서가 아니라, 법이 있어도 울리는 것이 더 무섭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