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마포구의 한 6층짜리 건물 옥상.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흙 냄새가 먼저 들어왔다. 20평 남짓한 공간에 상추와 고추, 방울토마토가 줄지어 자란다. 아래층은 사무실이고, 바깥은 아스팔트 위로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한여름이다. 그런데 이 옥상은 2~3도 낮다. 온도계가 아니라, 피부로 먼저 느껴진다.
건물 옥상에 흙을 올리는 일은 단순한 조경이 아니다. 도시가 스스로를 식히는 방식이다. 콘크리트와 아스팔트로 뒤덮인 도심은 태양 복사열을 흡수했다가 밤에 다시 내뿜는다. 주변 농촌보다 평균 2~5도 높은 이른바 '열섬 현상'이다. 옥상 녹화는 이 열을 식물의 증산 작용으로 분산시키고, 빗물을 머금어 도시 홍수도 늦춘다. 여기에 탄소 흡수 기능까지 더해지면서, 지방자치단체들이 녹화 사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수치로 본 도시 농업의 팽창
농림축산식품부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도시 농업 참여 인구는 2013년 약 15만 명에서 14년 만에 8배 가까이 늘었다. 이 가운데 옥상 텃밭 면적만 15만㎡에 달한다. 축구장 21개를 덮고도 남는 크기다. 단순한 취미 원예가 아니라 도시 생태계 복원의 한 축으로 기능하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서울시는 공공 건물 옥상 녹화를 의무화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강화해왔고, 일부 자치구는 민간 건물 소유자에게 시공비의 일부를 지원한다. 그 결과 학교 옥상, 주민센터 옥상, 심지어 지하철역 환기구 위까지 초록이 번지고 있다. 녹화 구조물 자체가 단열재 역할을 해 건물 냉방 에너지를 줄이는 부수 효과도 입증됐다. 국내외 연구 결과를 종합하면 옥상 녹화 후 여름철 건물 상층부 실내 온도는 최대 3~5도 낮아지는 것으로 분석된다.
텃밭이 낳는 또 다른 효과들
옥상 텃밭은 온도 이상의 것을 만든다. 주민이 모인다. 서울 노원구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는 입주민 30여 명이 옥상 텃밭 모임을 꾸려 매주 토요일 오전 함께 작물을 돌본다. 관리사무소 직원은 「처음엔 민원 창구였는데, 이제 여기서 같이 밥을 먹는다」고 했다. 고령화와 1인 가구 증가로 도시 공동체가 해체되는 흐름 속에서, 흙 한 삽이 이웃을 만들어내는 셈이다.
도시 농업이 식량 자급률에 기여하는 수준은 아직 미미하다. 그러나 먹거리 교육과 탄소 감축, 정신 건강 효과는 점점 데이터로 쌓이고 있다. 국내 일부 병원과 복지관이 원예 치료 프로그램을 도입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작물을 키운다는 건 결과보다 과정에 집중하게 한다」는 한 원예 치료사의 말은, 도시 농업이 단순한 녹화 사업의 범위를 넘어섰음을 보여준다.
한계와 과제, 그리고 다음 단계
넘어야 할 벽은 분명하다. 옥상 녹화는 구조 하중 문제가 첫 번째다. 일반 건물은 흙의 무게를 감당하도록 설계되지 않아, 경량 인공 토양이나 수경 재배 방식으로 대체해야 한다. 비용도 만만치 않다. 1㎡당 시공비는 방식에 따라 수십만 원에서 100만 원 이상 들 수 있어, 보조금 없이는 민간 확산이 더디다.
해외 사례는 한국보다 몇 걸음 앞서 있다. 독일 뮌헨은 일정 규모 이상의 신축 건물에 옥상 녹화를 의무화한 지 20년이 넘었다. 프랑스 파리는 2015년 상업용 건물 옥상에 녹화 또는 태양광 패널 설치를 법으로 규정했다. 싱가포르는 '수직 정원' 개념을 건물 외벽까지 확장하며 도시 녹지율을 끌어올리고 있다. 이들 도시의 공통점은 '선택'이 아닌 '규제'로 접근했다는 것이다.
한국도 법적 의무화 논의가 진행 중이나, 건물주의 재산권과 관리 부담이 쟁점으로 남아 있다. 그 사이 도시의 온도는 계속 오른다. 옥상 위 상추 한 포기가 거대 도시의 열을 식히기엔 턱없이 작아 보이지만, 15만㎡가 모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콘크리트 위의 초록이 선택지에서 표준으로 자리 잡을 날이, 생각보다 멀지 않을 수도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