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보유한 현금성 자산과 단기금융상품을 모두 더하면 약 147조 원, SK하이닉스는 약 54조 원이다. 두 회사를 합쳐도 200조 원 남짓. 그런데 정부가 발표한 3대 메가프로젝트의 투자 규모는 수천조 원을 넘나든다. 숫자만 놓고 보면 이미 산술이 맞지 않는다.
본지는 정부의 메가프로젝트 구상 자체를 부정하지 않는다. 첨단 제조업 클러스터, 미래 인프라, 전략 산업 육성은 국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과제다. 문제는 구상이 아니라 재원이다. 얼마를, 누가, 어떤 방식으로 감당할 것인지에 대한 설계가 청사진의 화려함에 한참 못 미친다. 본지는 이 간극을 공론장에 올려야 할 시점이라고 판단한다.
첫째, 민간 기업의 현금 동원력에는 명백한 한계가 있다. 국내 최대 제조 기업들조차 보유 현금을 전부 쏟아붓는다 해도 메가프로젝트 전체 재원의 극히 일부만 충당할 수 있다. 기업은 주주 책임 경영 아래 R&D, 운전자본, 설비 유지에도 자금을 배분해야 한다. 정부 발표 직후 민간 투자 확약이 쏟아지는 관행은 있지만, 그것이 실제 집행으로 이어지는 경로와 일정표는 언제나 불분명하다. '투자 의향서'와 '실제 집행'은 전혀 다른 이야기다.
둘째, 재정 당국의 여력도 넉넉하지 않다. 국가 채무는 이미 상당한 수준에 올라 있고, 복지·국방·교육 분야의 의무 지출은 해마다 늘어난다. 메가프로젝트에 재정을 집중 투입하려면 다른 어딘가에서 줄여야 한다. 무엇을 포기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 없이 총액만 제시하는 방식은 재원 계획이 아니라 희망 목록에 가깝다.
셋째, 금융 시장을 통한 조달도 만만치 않다. 산업은행·정책금융기관의 대출 확대, 프로젝트 파이낸싱, 인프라 펀드 조성 등이 거론되지만, 금리 환경과 글로벌 자금 흐름은 정부 의지와 무관하게 움직인다. 2025년 현재 고금리 기조가 완전히 풀리지 않은 상황에서 대규모 장기 프로젝트의 조달 비용은 사업성 자체를 흔들 수 있다. 수익률 가정이 조금만 빗나가도 부실이 공공 부문으로 전가되는 구조가 반복될 수 있다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
메가프로젝트가 '국가 도약의 기회'이려면 재원 조달의 현실 가능성을 먼저 따져야 한다. 단계별 투자 규모, 민·관의 분담 비율, 사업별 수익성 분석, 예산 우선순위 재편 계획이 구체적으로 제시되어야 한다. 국회는 정부로부터 이를 보고받고 검증할 의무가 있으며, 시장과 시민은 그 결과를 알 권리가 있다.
청사진은 그것을 실현할 재정 설계와 함께 제출될 때 비로소 정책이 된다. 숫자가 맞지 않는 계획은, 아무리 웅장해도 결국 다음 세대의 부담으로 귀착된다. 지금 필요한 것은 더 큰 숫자가 아니라 더 엄밀한 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