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로몬은 두 여인이 한 아이를 두고 다투자 칼을 들어 아이를 반으로 나누라 명했다. 진짜 어머니를 가려내기 위한 역설적 선택이었다. 2024년 5월 30일, 서울고법 가사2부가 내린 판결은 그 역설을 법정으로 옮겨놓은 듯했다. SK그룹 지배주주의 주식을 반으로 가르라는 명령. 다만 이번엔 지혜를 시험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상법과 가족법이 미처 상상하지 못한 질문을 들이밀고 있었다. 「무형의 기여」는 얼마짜리인가.
항소심 재판부는 노태우 전 대통령의 정치적 영향력이 SK 성장의 방패막이 역할을 했다고 인정했다. 비자금 300억 원이 유입된 사실도 재산 형성의 기여 요인으로 봤다. 그 결과 SK㈜ 주식은 부부 공동재산으로 분류됐고, 역대 최대 규모의 재산 분할 판결이 선고됐다. 숫자는 1조 3800억 원대. 한국 사법 역사에 전례 없는 이정표가 세워진 순간이었다.
재계는 즉각 긴장했다. 이 판결이 확정되면, 대기업 오너 일가의 지분 구조가 이혼이라는 사적 사건 하나로 흔들릴 수 있다는 선례가 생기기 때문이다. 국내 주요 그룹의 지배구조는 대부분 오너 개인 지분을 정점으로 한 피라미드 형태다. 그 꼭대기 지분이 가사 재판의 분할 대상이 된다면, 경영권 안정성은 법원 판결문 한 장에 의탁하는 셈이 된다. 외국인 투자자들이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구조적 요인으로 꼽는 지배구조 불투명성이 이번엔 전혀 다른 각도에서 조명받고 있다.
물론 반론도 만만치 않다. 결혼 기간 내내 기업 경영에 직접 참여하지 않은 배우자의 기여를 어느 범위까지 인정하느냐는 법철학적으로도 논쟁적이다. 특히 이 사건처럼 기여의 핵심이 故人의 정치 권력과 비자금이라면, 그 가치를 주식 시가로 환산하는 방식 자체가 과연 합리적이냐는 지적도 나온다. 재산 분할은 응보가 아니라 청산이라는 원칙에서 볼 때, 「기여의 질」과 「기여의 양」을 어떻게 저울질할 것인지는 아직 법원도 완전한 답을 갖고 있지 않다.
그러나 이 판결이 진정으로 중요한 이유는 이혼 당사자들의 승패가 아니다. 판결은 한국 법원이 처음으로 무형 자산의 가치를 기업 지분 평가에 본격적으로 편입시켰다는 데 있다. 브랜드, 네트워크, 정치적 우산 — 재무제표에 올라오지 않는 이 자산들이 기업 성장의 핵심 동력이었다는 사실을 사법부가 공식으로 인정한 것이다. 이는 회계학계와 법학계가 수십 년째 씨름해온 「무형 자산의 법적 지위」 문제를 한국 법정이 정면으로 건드린 사건이다.
파장은 이혼법정을 넘어선다. 상속·증여·M&A 국면에서 기업 가치를 산정할 때, 이제 법원은 재무 수치 너머의 무형 기여를 들여다보겠다는 신호를 보냈다. 기업 실사(due diligence)의 개념이 확장되고, 혼인 재산 계약(prenuptial agreement)에 대한 수요도 재벌가 안팎에서 달라질 수 있다. 지금껏 「가족 경영」의 내부 논리로만 작동하던 것들이 외부의 법적 기준 앞에 서게 됐다.
대법원 상고심이 최종 판단을 내리기까지 이 판결은 아직 확정이 아니다. 하지만 법은 종종 확정 이전부터 현실을 바꾼다. 재벌 총수들이 지금 이 순간 법무법인과 마주 앉아 지분 구조를 재검토하고 있다면, 판결문은 이미 효력을 발휘하고 있는 셈이다.
한 제국의 무게가 혼인신고서 한 장에 기대어 있었다는 것을, 우리는 이제 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