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역사재단이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에서 수집한 자료 중 1948년 6월 극동공군사령부가 작성한 보고서가 독도를 「한국의 일부」로 기록했음을 확인했다. 1947년 이후 미 당국이 독도 영토를 한국으로 인식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공식 증거다.
해당 보고서는 그 달 8일 미 공군 연습비행 중 발생한 사건으로, 독도 인근 어로 지역에서 14명의 어민이 숨지고 여럿이 다친 사건을 기록했다. 보고서 속 진술에 「1947년 9월 리앙쿠르 암(독도의 국제 명칭)이 한국의 일부라는 것이 분명히 확립되었음에도 불구하고」라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으며, 훈련 사용 시 주한미군사령관의 사전 공지를 규정한 조항도 한국 관할 영토로의 인정을 반영한다.
성공회대 동아시아연구소 전갑생 연구교수가 NARA 보관 자료 중 1948년부터 1952년까지의 미군 공식 서류 1천60개 상자를 정밀 조사하는 과정에서 이 자료를 발굴했다. 극동사령부·극동공군·제1항공사단 등 6개 제대의 상호 참고 기록이 담긴 222쪽 분량의 문서다.
함께 기증된 자료에는 1946년 울릉도사가 경상북도 지사에게 제출한 공문도 있다. 광복 이후 독도의 상황을 다룬 가장 오래된 행정 기록으로, 울릉도 주민의 생업 기록은 실질적 점유의 근거가 된다. 대한제국 시기인 1906년 울도군수 심흥택이 남긴 필사본도 포함되어 있는데, 1905년 일본의 불법 편입 직후 한국 측이 이를 기록한 증거로 작용한다.
동북아역사재단 독도실장 홍성근은 이번 자료가 「1947∼1948년 미국 정부 당국이 독도를 명확한 한국 영토로 인정하고 있었음을 드러내는 공식 기록」이라고 평가했다. 1949년 시볼드의 제안과 1951년 러스크 서한에서 독도가 일본 영토인 것처럼 주장한 내용이 「일시적으로 변조되고 훼손된 결과」임을 증명하는 사료라고 언급했다.
동북아역사재단은 추후 연구 성과를 정리한 자료집을 출간할 계획이며, 서울 영등포의 독도체험관에서 기획 전시를 통해 이 자료를 공개하기로 했다. 재단 측은 「광복 직후 1945∼1948년 사이 한국의 독도 영유권을 직접 입증하는 1차 사료가 부족한 현실에서 이번 발굴로 한·미 양국의 독도 인식을 함께 검증할 수 있는 자료 저장소가 크게 확대될 것」이라고 밝혔다.